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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대통령의 사람들]<26>게이트의 사슬 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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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대통령의 사람들]<26>게이트의 사슬 ⑨

입력
2003.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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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2월 타이거풀스(TPI)의 송재빈 부사장은 DJ의 3남 김홍걸씨의 측근인 최규선씨와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술자리에 초대했다. 며칠 전 TPI가 체육복표사업자로 선정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최씨는 자신과 홍걸씨가 사업자 선정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침이 마르도록 공치사했다.로비의 대가로 수십억원대에 달하는 TPI 주식과 현금을 받은 최씨와 홍걸씨는 '돈값'을 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경쟁상대인 한국전자복권 컨소시엄은 이수동 아태재단 이사 등 DJ의 차남 김홍업씨 라인을 동원했다는 말이 파다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다. 항간에는 사업자 선정을 놓고 대통령의 두 아들이 '왕자의 난'을 벌였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체육복표사업은 2000년 당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지며 온갖 로비설이 나돌았다. 사업 제안과 법안 심의 등 모든 과정에 TPI가 직·간접 관여했고 TPI의 후원금이나 부탁을 받지 않은 문광위 의원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2000년 5월까지만 해도 TPI의 독주는 계속됐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후발업체인 전자복권 컨소시엄이 급부상하면서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정권 실세가 이들을 밀고 있다는 설이 파다한 가운데 전자복권은 최종 경쟁업체로 등장했다. 사업자 선정권을 쥐고 있던 국민체육진흥공단도 전자복권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공단이 내정한 심사위원 명단마저 공개돼 로비설이 횡행했다. 여기에 공단의 자회사까지 전자복권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TPI가 홍걸씨에게 접근한 건 이 즈음이었다. TPI 관계자의 말대로 "2년간 공들인 탑이 무너질 상황이었다." 송 부사장측 인사의 증언. "이수동씨와 실세 K씨가 전자복권의 배후에 있었다. 전자복권의 엄청난 로비력에 한순간에 모든 게 날아갈 판이었다. 이수동씨와 K씨는 공단 고위층에 로비를 벌였다. 그래서 홍걸씨에게 공정한 심사를 부탁한 것이다. 검찰은 전자복권을 먼저 조사해야 했다."

2000년 11월 공단 이사장이 이연택씨에서 최일홍씨로 교체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최 이사장은 심사위원 선정을 교수·전문가중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바꾸었고 기술·자본력이 앞서 있던 TPI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곧 두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공단의 실사과정에서 기술적 하자가 발견돼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이 박탈될 지경에 몰렸다. TPI는 홍걸씨에게 매달렸고 최성규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의 지시를 받은 수사관이 공단 실무자를 조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다시 TPI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대상자 선정 이후에도 전자복권의 로비는 집요했다. 일이 잘 풀리다가도 저쪽 로비에 걸리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실사과정에서 경미한 기술적 에러가 발견되자 공단은 우리와 계약을 해지하고 차점자인 전자복권으로 협상대상자를 바꾸려 했다. 방송광고가 금지되는 등 계약조건도 최악으로 몰렸다." 복표사업에 관여한 고위층 A씨는 "전자복권에는 이수동씨와 K씨, 공단 고위층 L씨 등 실세가 좍 깔려 있었다"며 "공단이 타이거풀스를 떨어뜨리기 위해 일부러 계약조건을 악화시켰다는 뒷말까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수동씨는 전자복권 사장 김현성씨가 제주도의 복권사업권을 따낼 수 있도록 힘을 써줄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검찰 수사팀도 정권 실세간 암투의 기미를 눈치챘지만 수사를 확대하진 않았다. 수사검사 B씨의 말. "송재빈은 홍걸씨에게 공정경쟁을 부탁했는데 정권 실세를 끼고 로비를 벌이던 전자복권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수동씨와 K씨, 홍업씨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홍업씨의 측근 C씨는 "실세들의 이름이 나돌았지만 홍업씨는 사업 자체도 몰랐다. 나중에 홍걸씨 연루 소식을 듣고 '왜 말리지 못했느냐'고 야단쳤다"고 말했다. 당시의 검찰 고위관계자는 "전자복권이 힘으로 밀어붙이자 타이거풀스는 홍걸씨에게 매달려 두 아들간의 싸움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김 사장이 해외로 도피한 데다 전자복권쪽은 수사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홍걸씨의 힘은 어디까지 미친 것일까. 양측간 힘겨루기가 한창이던 2000년 8월 최씨는 유상부 포스코 회장을 만났다. 계열사인 포스데이타가 전자복권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최씨는 이 자리에서 "나중에 포스코가 정치적 문제에 휘말릴 위험이 크니 전자복권 컨소시엄에서 탈퇴하는 게 좋겠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측은 지금까지도 이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그로부터 한달 뒤 포스데이타는 탈퇴했고 전자복권은 치명타를 입었다.

TPI 관계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최 이사장과 이홍석 문화관광부 차관보도 외압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 관계자 D씨의 설명. "홍걸씨와 최씨가 주식과 돈을 받은 뒤 무언가 대가성 행위가 있었다. 송 부사장도 홍걸씨가 부탁을 들어줘 공정심사가 됐다고 여겼다. 공단이나 문화부에 외압이 있었을 것이란 심증이 갔지만 최 이사장 등은 이를 부인했다. 당시만 해도 정권이 살아서 서슬이 퍼럴 때다. 누가 감히 청와대에서 외압 받았다고 얘기하겠나. 두 사람이 안고가면 어쩔 도리가 없다."

최 이사장은 홍걸씨 관련성은 부인했지만 고위층의 로비 시도가 있었음은 간접 시인했다. "부임할 당시 전자복권의 로비가 위에서 영향력을 미쳤고 (공단내에) 전자복권에 경도된 분위기가 있었다. 청와대에서 로비해주면 되는 줄 알고 자기들끼리 그랬다. 내가 부임한 후 청와대나 문화부는 보고도 받지 않고 관여도 안했다. 타이거풀스는 홍걸씨라도 로비는 안통한다는 걸 알고 '공정하게 심사해달라'고 하소연했다. 전자복권은 실사과정에서 수시로 이의를 제기하고 공단 실무진이 타이거풀스를 괴롭혔다는 얘기는 들었다. 숱한 곤욕을 치른 타이거풀스가 '뒤집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로비를 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송씨측은 "홍걸씨가 힘이 안된 건 아니지만 큰 도움은 안됐다. 공단 이사장이 교체된 것도 홍걸씨 힘 때문은 아니었다"고 평가 절하했다.

당시 양측간 정치적 타협은 이뤄지지 않았고 청와대도 직접 중재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TPI의 고위 관계자의 말. "양측이 이미 TPI와 전자복권에서 로비를 받은 게 있어 타협이 힘들었다.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였다. 청와대도 조정이 안돼 힘으로 결판났다. 친분이 깊었던 최씨와 K씨도 이미 적대적 관계로 벌어져 말이 통하지 않았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포스코, 왜 TPI·김홍걸에 약했나

2001년 3월 유상부 포스코 회장은 박지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에게 전화를 받았다. "해태 야구단을 광양제철이 인수해달라"는 부탁이었다. 호남 의원들에게서도 청탁전화가 빗발쳤지만 인수자금이 만만치 않았다.

고심하던 유 회장은 자문역이던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최규선씨에게 상의했다. 최씨는 "때마침 타이거풀스도 해태 인수를 추진중이니 주식을 매입하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다. 박 수석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지 못하던 유 회장은 반색했다. 더구나 최씨 뒤엔 든든한 보호막인 홍걸씨가 버티고 있었다. 타이거풀스는 120억원 지원을 요구했고 유 회장은 협력업체까지 동원, 시가보다 비싼 70억원에 주식을 매입했다. 틈새를 노린 최씨의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2000년 9월엔 포스데이타가 체육복표사업에서 타이거풀스의 강력한 경쟁자인 한국전자복권 컨소시엄에서 탈퇴했다. 당시 최씨가 유 회장에게 컨소시엄 탈퇴를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광호 포스데이타 사장은 "외부 압력이나 그룹의 지시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포스코는 왜 타이거풀스와 홍걸씨에게 유독 약했던 것일까. 당시 유 회장의 핵심측근인 유병창 전무는 "2000년 7월 이희호 여사가 유 회장에게 '홍걸씨를 만나 사업상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 거절할 수 없었다"고 폭탄발언을 했다. 청와대가 펄쩍 뛰고 포스코도 뒤늦게 부인했지만 의혹은 짙었다.

유 전무의 증언을 들어보자. "급박한 상황이라 유 회장의 말을 정확하게 들은 건 아니지만 만들어낸 얘기는 아니다. 일부 언론이 유 회장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미 그런 말이 나왔다. 내가 유 회장에게 물어보았을 때도 그런 얘기가 일부 언급됐다. 나는 단편적 말을 종합 판단해 언론에 전한 것이다."

검찰도 이 여사의 관여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검찰 간부 D씨의 말. "청와대와 포스코의 공식해명 뒤 이 여사 관여설은 더 이상 조사가 안돼 미제로 남았다. 솔직히 영부인을 어찌 조사하나. 어머니 입장에선 사회물정 모르고 홀로 서지 못하는 아들이 정상적으로 살길 원하고, 욕심을 낼 수 있는 것 아닌가. 유 회장도 연임 문제가 걸려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확인되진 않았다."

/배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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