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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내고향" 푸른 눈의 푸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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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내고향" 푸른 눈의 푸른 사랑

입력
2003.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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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는 아무 것도 가져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삶이 중요합니다. 살아 있을 때 인생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 그보다 불행한 일은 없을 겁니다."제주에 정착한 지 33년째, 벽안의 미국인 프레드릭 더스틴(73·사진)씨는 '내 고향은 제주'라고 말하는 어엿한 북제주군 주민이다. 1996년 명예군민증을 받아 제주 주민으로 공인받은 그가 다시 고향 제주를 위해 큰 약속을 했다.

구좌읍 김녕리에서 미로(迷路) 숲을 운영하며 얻는 수익금 가운데 매년 3,000만원을 한때 자신이 몸담았던 제주대학교의 외국인 교수 지원금으로 내놓기로 한 것.

"세계화시대, 학생들이 넓은 안목과 지식을 가지려면 외국인 교수를 적극 유치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그들에 대한 적절한 대우와 지원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제가 돈을 내기로 한 것은 그 때문이지요."

그는 1952년 4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미8군 7연대 소속으로 한국전에 참전하면서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가난했지만 문화적 깊이가 만만치 않은 나라였다.

그가 워싱턴주립대에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선우 휘의 불꽃을 통해 본 한국 현대문학의 한 측면'은 미국서 이뤄진 최초의 한국 현대문학 연구로 평가받고 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55년 돌아온 그는 아예 우리나라에 주저 앉고 만다. 연세대와 중앙대 강사, 한국일보사 카피라이터, 가나안양계(주) 전무 등 여러 일을 하다 71년 제주대 객원교수로 임용돼 제주도와 인연을 맺었다.

퇴직금 등으로 김녕에 땅을 구입한 그는 너무 척박해서 농사짓기에는 부적합한 그 땅에 키 2m의 측백나무를 심어 미로 숲인 제주김녕미로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키 큰 나무 사이로 난 샛길을 찾지 못하면 방향을 잃고 헤매도록 만든 체험형 숲이다.

미로 숲 조성공사는 1987년 시작돼 2001년 마무리됐는데, 3만6,000평의 숲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게 했다.

"미로는 인생 역정과 같죠. 앞 뒤가 꽉 막혀 있다가도 어렵사리 빠져 나오면 성취감을 느끼게 됩니다."

더스틴씨는 20년 전 자식도 없이 부인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고 홀로 남았을 때 깊은 절망과 함께 인생의 미로에서 헤맨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여유로운 미소에서 인생의 미로를 헤쳐 나와 자신의 길을 찾은 승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입장료 등 제주김녕미로에서 얻은 수입의 80%를 후학을 위해 환원하겠다는 그는 최근 제주대와 '외국인 교수 인건비 지원' 협약을 맺어 연간 3,000만원 지원을 약속했다. 김녕리의 노인대학에도 최근 2,000만원을 기탁했다. 앞으로는 고고학 분야의 연구에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한다.

동네 주민들, 특히 같은 연령의 노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그는 "이제 미국에 가 봐야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며 "김녕에서 맺은 인연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이곳에서 살다가 묻히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제주=김재하기자 jaeha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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