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폭탄 테러로 세상이 온통 혼란에 빠졌다. 예루살렘에서 자카르타, 바그다드에 이르기까지 자살폭탄 테러는 이제 테러단체의 가장 확실한 무기로 자리잡았다. 누가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하는가, 또한 누가 이들에게 폭탄을 짊어지게 하는가. 세상을 비웃듯 도처에서 발생하는 자폭테러와 테러범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왜 자살을 택하나
뉴욕타임스는 최근 '테러산업이 최후의 무기를 배치했다'는 기사에서 자폭테러의 배경과 영향을 자세히 분석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늘 자폭테러 지원자로 들끓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스라엘의 억압정책에 짓눌려 온 이들에게 일상은 곧 극한 자체다. 희망없는 삶에 지친 이들에게 자살은 탈출구이자 마지막 무기가 된다. '눈에는 눈'이라는 논리로 복수를 신봉하는 이슬람 세계에서 누군가 탄압하는 자와 성전(지하드)을 치르고 숨지는 것은 곧 순교이고, 천국으로 가는 확실한 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때문인지 팔레스타인에서는 자폭테러의 두 가지 요소인 폭탄과 사람 가운데 사람을 구하기가 훨씬 쉽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버드대의 제시카 스턴 박사는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자폭테러는 매우 효율적인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자폭테러는 종교적 성격만을 띤 것은 아니다. 스리랑카의 반군조직 타밀엘람 해방 호랑이(LTTE)나 체첸 반군의 자폭테러 동기는 종교적 신념에 민족주의가 혼재한 성격을 갖고 있다. 또 자폭테러에 성공하는 순간 테러범은 영웅이 되고 가족들은 재정적인 지원을 받는 등의 보다 단순한 동기도 있다. 자폭 테러범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불쌍한 존재에서 한순간에 주위사람 모두가 찬양하고 두고두고 기념하는 역사적 인물이 되는 것이다.
왜 자폭테러인가
21일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으로 숨진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아부 샤나브는 1999년 인터뷰에서 자폭테러의 유일한 성공조건으로 '스위치를 누르는 용기'를 꼽았다. 자폭 테러범은 스위치를 누르는 것 말고는 특별한 훈련이 필요 없다. 칼이나 총기를 사용하는 테러는 아무래도 불안해 하기 마련이다.
최소한의 훈련이 필요하며 어느정도 운도 따라야 한다. 그만큼 실패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또 결행에 나서는 순간 이미 삶을 포기하기 때문에 범행후 어떻게 도주할까에 대한 걱정도 없다. 때문에 서방의 대테러기관들은 자폭테러를 기획단계에서 막지 못하면 사실상 저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왜 계속되고 있나
자폭테러는 불특정 다수에게 막대한 심리적 파장을 일으킨다. 공격 즉시 변화와 선전효과를 체감할 수 있다. 한 명의 자폭테러범이 대량살상무기 없이도 한 지역의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실제로 지난주 예루살렘과 바그다드에서 발생한 버스안 자폭테러와 유엔본부 차량테러는 향후 이스라엘과 이라크의 안정에 장기적이고 심대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누가 자폭테러에 나서나
흔히들 자폭테러범은 민주주의를 증오하는 정신병자라고 생각한다. 큰 오산이다. 이들은 대부분 중산층이나 상류계층 출신이다. 가난도 동기가 되지 못한다. 미시건대의 스콧 애트런 박사는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점점 사라져가는 희망"이라고 말한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평생 꿈꿔왔던 보통의 삶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만큼 극단적인 행동을 지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18∼25세의 젊은 남성이 주를 이뤘던 범인 계층도 최근에는 기혼, 여성으로까지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테러 세계에서 모방은 필수다. 9·11테러의 엄청난 효과를 확인한 테러범들은 확실한 방법을 답습하고 새로운 형식을 고민한다. 테러단체는 최근 자폭테러에 관한 영상기록에 새로이 주목하고 있다. 자폭테러의 선전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 자폭 테러란
폭력을 써서 적을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를 뜻하는 테러(terror)는 1789년 프랑스 학술원 사전에 처음으로 표제어로 등장했다. 테러 중에서도 폭탄과 함께 자폭하는 방식으로 목표물을 공격하는 것을 자살폭탄 테러라고 부른다. 폭탄을 차량 등에 싣고 돌진하거나 직접 폭탄을 안고 공격하는 게 가장 흔한 자폭 테러 방식이다. 9·11 테러처럼 항공기 자체를 목표물에 충돌시킨 것도 광의의 자폭 테러에 포함된다.
자폭 테러는 1980년대 이후 급속히 확산됐다. 83년 8월18일 레바논 주재 미 대사관에서 63명이, 같은 해 10월23일 레바논에 주둔한 미군 해병대 사령부에서 241명이 사망하는 자폭 테러가 잇따라 발생한 뒤 유행처럼 번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가 항공기와 함께 자신의 몸을 던진 것은 자폭 공격이지만 전시 상황이어서 테러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김광덕기자
● 주요 테러단체들
1980년 이후 발생한 자폭 테러는 400여건에 이른다. 미국의 주간지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는 "20여년간 17개의 테러 단체가 14개국에서 자폭 테러를 벌여 총 5,000여명이 사망하고 2만여명이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자폭 테러를 자주 저지른 단체로는 9·11 테러를 저지른 알 카에다, 팔레스타인 계열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레바논에 근거지를 둔 헤즈볼라, 타밀엘람 해방 호랑이(LTTE), 체첸 반군, 제마 이슬라미야(JI) 등을 꼽을 수 있다.
알 카에다는 1979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아랍 의용군으로 참전한 오사마 빈 라덴이 결성한 테러 지원 조직이다. 2001년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해 2,957명의 사망자를 낸 항공기 테러 사건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미국,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34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용기'를 뜻하는 하마스는 1987년 아마드 야신이 창설한 팔레스타인 내부의 최대 이슬람 저항 단체이다. 중동 내 유대인 국가를 거부하는 수니파 단체로 이스라엘인을 상대로 100여 건의 자폭 테러를 자행했다. 이슬람 지하드(성전)는 79년 설립됐으며 지도부는 대부분 시리아에 거주하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이 단체는 이스라엘 목표물을 10여 차례 공격한 바 있다.
'신의 당'이란 뜻의 헤즈볼라는 1983년 레바논에 시아파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다. 1983년 베이루트에 주둔한 미 해병대 사령부에 차량 폭탄 공격을 하는 등 2000년 5월 이슬라엘군이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하기 전까지 활발한 무장 투쟁을 벌였다. '이슬람 공동체'란 의미를 지닌 제마 이슬라미야는 1990년대부터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전역에 조직망을 갖춘 이슬람 무장 조직이다. 2002년 발리 폭탄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으며 알 카에다와의 연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밀엘람 해방 호랑이(LTTE)는 타밀족의 독립을 주장하는 스리랑카의 반군 단체로 1980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168 차례의 자폭 테러를 했다. 또 러시아 체첸공화국의 이슬람 교도들로 구성된 체첸 반군은 완전 독립을 주장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테러 공격을 벌이고 있다. 지난 해 10월 폭탄 등으로 무장한 체첸 반군 50여명은 모스크바 시내 오페라 극장을 점령, 인질극을 벌이다가 러시아 특수부대원들에 의해 전원 사살됐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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