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北京)대 칭화(淸華)대 런민(人民)대 베이징위옌(北京語言)대 등 중국의 유명 대학이 몰려 있는 베이징 우다오커우(五道口) 거리의 밤은 한국 유학생들로 붐볐다. 한국 학생들이 자주 찾는 한글 간판의 식당과 호프집, 만화방 등도 즐비했다. 여기서 만난 베이징띠즈(北京地質)대 한어수평고시(HSK) 초급반 재학생 이재덕(25)씨는 "불투명한 앞날을 중국에 걸고 싶어 서울 모 대학 전기과를 그만두고 중국행을 택했다"며 힘찬 목소리로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러나 한국 학생들의 중국유학붐은 아직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씨와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허찬열(25)씨는 "물가가 싸고 놀기 좋다는 이유로 1년간 술집과 당구장에서 허송세월하는 친구도 많이 보았다"며 "같은 반 학생 10명 중 5명은 아예 처음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고 중국 유학의 현실을 털어놓았다.중국 땅을 밟는 한국 학생들이 날로 늘고 있다. 2002년 10월 중국 교육부 국가유학생기금관리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중국내 유학생 8만5,829명 중 한국인은 3만6,093명으로, 일본 유학생의 배가 넘는다. 중국의 경제적 잠재력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 대학들의 적극적인 문호개방 등이 유학생 급증의 이유. 모든 대학이 국립인 중국에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몇몇 대학들은 한국측과 합작회사 형식의 사설어학원을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아직 한국 유학생들의 성공 사례는 드물다. 지난해 송병국(16)군이 베이징대 자연계에 최연소 수석 입학해 화제가 됐지만 재학생들은 뚜렷한 실적이 없다. 칭화대에서는 2001년 처음으로 2명의 졸업생이 나올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이 대학 건축과 4년생인 김동찬(22)씨는 "6∼7년간 졸업학점을 이수하지 못해 전과하거나 아예 한국으로 돌아간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컴퓨터공학과 1년생인 김재정(19)군은 "입학시험에는 물리 화학 수학 등 외국인 전형이 따로 있어 부담이 덜하지만 본과에 들어가면 12억 인구에서 뽑혀온 중국 수재들과 경쟁해야 한다"며 "월반까지 하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밤을 꼬박 새워도 힘들다"고 말했다.
중국경제의 중심지인 상하이(上海)에도 한국 유학생 2,500여명이 몰려들어 공부하고 있다. 이중 푸단(復旦)대의 유학생수는 본과생 및 연구생 (대학원 석·박사과정) 400여명, 언어연수생 400여명 등 총 800여명. 이번 가을 학기에만 400명 이상의 학생이 새로 입학한다. 올해 지원자가 지난 해의 2배에 달해 HSK 6급 이상은 정원에 관계없이 합격시킨다는 기존 방침과 달리 고교 내신을 감안, 상당수를 탈락시켰다. 대외한어과도 3학년에 편입생 70명이 들어오면서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진급하는 학생들 70명 중 40명이 낙제했다.
현재 푸단대 경제학원 및 관리학원(MBA)에 재학중인 한국인 연구생은 5명. 지난해 지원자 12명 중 1명만이 합격했을 정도로 시험이 까다롭다. 경희대 중문과를 졸업한 뒤 중국을 찾은 허태민(27)씨도 지난해 한 번 낙방한 경험이 있다. 허씨는 "석·박사과정 진학을 위해서는 수학, 경제학 시험이 필수인데 중문과 학생에게는 경제학과 수학이, 경제·경영학 전공자에게는 중국어가 어렵다"고 말했다.
조기유학 열풍도 불고 있다. 후이자(匯佳)중이나 55중, 19중 등 베이징의 명문 사립학교를 한국 학생들이 베이징대 칭화대 등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면서 일부 학교는 아예 한국 학생들을 위한 분교까지 설립했다. 스칭(世靑)중 2년생인 김지은(17)양은 처음 명문 사학 55중에 입학했지만 한국 유학생이 늘어나면서 분교인 스칭중으로 옮겼다. 칭화대 IT계열을 희망하는 김양은 이미 HSK 8급을 땄다. 아는 언니와 함께 하숙을 하고 있다는 김양은 "학교 급우들 중 부모님과 떨어져 이렇게 나와 있는 학생들이 꽤 된다"며 "공부를 따라 가기 바빠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다"고 말했다.
중국 유학생들의 현지 취업 문제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통지(同濟)대 토목공학과 박사과정 조순현씨는 "중국에 진출한 많은 한국인 기업이 현지 채용을 하지 않고 국내에서 채용한 뒤 재파견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은 비용낭비"라며 "활발한 토목 및 건축사업으로 중국기업의 수요가 상당해 졸업 후 중국기업을 공략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상하이=박은형기자 voice@hk.co.kr
■ 쩌우 칭화대 홍보처 부주임
"2005년까지 유학생 규모를 전체 학생의 10% 이상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중국 칭화(淸華)대 쩌우웨이홍(周月紅·35·사진) 홍보처 부주임은 "중국 대학 랭킹 1위인 칭화대는 2001년부터 '종합성' '연구성' '개방성'을 학교 이념으로 5년간의 종합발전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며 "칭화대가 국제문화교류에 앞장서야 한다는 차원에서 개방성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칭화대는 발전계획에 따라 현재 전체 정원 3만5,000명 중 3% 미만인 외국 유학생 규모를 2005년까지 10%, 즉 3,500명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쩌우 부주임은 "칭화대가 그동안 이공계중심대학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종합대학으로의 발전을 위해 2001년 미술학원을 설립했고 조만간 어문계열도 설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IT학원이 설립된 바 있다.
그는 또 "해외 유학설명회를 통해 유학생들을 적극 유인할 계획"이라며 "한국 학생들의 칭화대 선호도를 감안할 때 한국 방문을 우선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서는 점진적인 민영화 흐름에 맞추어 교수 및 학생 교류뿐 아니라 현지에 사설학원 형식의 양국 합작학교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칭화대 유학처가 제공한 지난해말 통계에 따르면 945명의 전체 유학생 중 절반 가량인 400여명이 한국학생. 본과생이 100∼200여명이고 언어연수생도 전체 492명 중 한국학생이 200∼300명이다.
쩌우 부주임은 "최근 들어 한국 언어연수생이 급증하고 있는데 전공과 실력을 감안하지 않은 채 '간판'만 보고 무작정 명문대의 연수코스를 수강하고 있다"며 "칭화대가 지향하는 것은 연수생보다는 본과생과 대학원생의 유치인 만큼 장기적인 '득실'을 계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쩌우 부주임에게 낯선 것은 학생들의 '게으름'. 그는 "중국 학생들의 경우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도 아침 수업에 빠지는 법이 없는데 한국 학생들은 아침 8시에 시작하는 1교시 수업에 빠지기 일쑤여서 의아하다"며 한국 유학생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박은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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