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이처럼 공개적으로 비판을 가했다. 이 보도를 대하는 순간 엉뚱하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노무현 정부의 인기가 임기 초인데도 이례적으로 저조하지만 한나라당의 인기도 바닥을 기기는 매한가지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한나라당이 그나마 지금 정도의 지지를 유지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가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이지, 참여정부가 제대로 개혁드라이브를 몰고 갔더라면 한나라당은 존폐 위기에 몰려 있을 것이다. 따라서 최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라는 정파적 이해에 매몰되어 있었다면 노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해 한나라당이 지금의 지지라도 유지하고 있는 점과 관련해 "대통령을 잘 뽑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그 판단의 옳고 그름을 넘어서, 최소한 최 대표가 정파가 아닌 국민전체 이익의 관점에서 사물을 판단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라고 느낀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최 대표의 최근 행적을 보고 있노라면, 최 대표식 표현대로 "솔직히 말해 야당대표를 잘못 뽑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 대표가 대표 당선 후 여당에 대립각을 세워 입론해 나가는 과거의 선명야당 노선을 벗어나 정책정당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개인적으로 한국정치가 이제 건설적인 정책대결로 나가는구나 하고 손뼉을 쳐 환영했다. 그러나 최 대표가 정부의 광복절 행사에는 당직자를 보내고 자신은 인공기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불태운 극우냉전단체들의 집회에 앉아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이런 퇴행적 정책노선이라면 차라리 선명야당이 나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 대표는 그동안 두 차례의 대선 패배와 관련해, 한나라당이 '골통보수'의 이미지를 벗어나 합리적 보수로 변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최 대표와 한나라당의 최근 행적은 오히려 '골통보수'로 뒷걸음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회창 전총재나 서청원 전대표의 경우 그래도 국경일 행사에 당직자를 보내고 자신은 극우단체 집회에 앉아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극우냉전 노선도 하나의 정책노선이다. 그리고 그것이 최 대표가 말하는 정책정당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정확히 최 대표가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골통보수'노선이며 지난 대선이 보여줬듯이 한나라당이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자살노선에 다름 아니다. 이제 우리 사회의 절대다수가 탈냉전세대이며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극우단체들이 최 대표가 참석한 행사에서 인공기를 불태운 것과 관련해 노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한 것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이 시비를 걸고 있지만, 여론조사가 보여주듯이 아직도 다수의 국민이 노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지금 참여정부와 한나라당 사이에는 악순환형의 적대적 상호의존 관계가 존재한다. 참여정부와 한나라당이 모두 별로 잘 하지 못하면서도 상대방이 못하기 때문에 그 반사적 효과로 그나마 자신들에 대한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대립하면서도 사실은 상호의존하고 있는 나쁜 형태의 적대적 상호의존 관계이다. 쉽게 말해 상대방이 잘해 국민적 지지를 얻기 때문에 경쟁세력이 더 잘해 지지를 뺏어오려고 노력하는, 좋은 형태의 경쟁이 아니라 상대방이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못해도 그런대로 지지를 얻어 서로 현상유지를 하는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다.
사실 참여정부가 개혁을 제대로 해 높은 지지를 유지했더라면 한나라당도 뼈를 깎는 자기개혁을 했을 것이고, 한나라당이 혁명적인 자기 변신을 통해 지지를 넓혀 갔다면 참여정부와 민주당도 위기의식에서 강력한 개혁을 추진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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