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블레어'가 '죽은 켈리'에 발목이 단단히 잡혔다.대량살상무기(WMD) 조사 전문가 데이비드 켈리 박사의 죽음을 둘러싼 조사에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 불리한 내용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켈리 박사는 7월 영국 정부가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라크의 WMD 위협을 과장했다는 내용을 BBC 방송에 제보한 인사로 지목된 뒤 자살했다. 이를 계기로 켈리 박사가 자살에 이르게 된 배경을 규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 브라이언 허튼 판사가 이끄는 조사단이 출범했다.
허튼 조사단은 23일 블레어 총리가 켈리 박사의 자살에 결정적인 압력 요인을 제공했음을 시사하는 다량의 문건을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했다. 공개된 문건은 블레어 총리가 주재한 각종 회의와 보좌관들의 대화 등 9,000쪽 분량이다. 문건 중에는 특히 블레어 총리가 켈리 박사를 BBC 보도의 제보자로 지목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켈리 박사가 제보자로 지목된 뒤에는 정부가 그의 신원을 공개할 경우 비판을 받게 될지 여부를 검토한 부분도 있다.
이것은 결국 이라크의 위협을 과장했다는 BBC의 보도를 희석시키기 위해 블레어 총리가 켈리 박사를 밀고자로 내몰았다는 여론의 심증을 굳히는 셈이 된다. 이와 관련, 선데이 타임스는 24일 "블레어가 BBC 보도에 비정상적일 정도로 집요한 관심을 보였다"며 켈리 박사의 신원을 밝힌 점을 비난했다.
28일 허튼 조사단의 법정 증언대에 설 블레어 총리가 정치적 타격을 받을 것은 자명하다. 문서 공개 직후 노동당 좌파 의원들은 "켈리 박사 사건은 영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이라고 평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4일 텔레그라프지는 정부가 국민적 신뢰를 상실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조사에 따르면 이라크의 위협과 관련,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는 응답이 3분의 2를 넘었다.
응답자의 56%는 켈리 박사의 자살에 정부가 책임이 있다고 답했고, 제프 훈 국방장관이 사임해야 한다는 응답도 절반이 넘었다. 전체 응답자의 58%와 노동당 지지자의 52%는 켈리 박사 사망 후 블레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됐다고 답했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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