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박히거나 이빨까다 걸리면 깨질 줄 알아." (숨어 있거나 잡담 하다 걸리면 혼날 줄 알아라)"야, 병아리, 쪼개지 말고 쏘가리나 중빵 올지 모르니까 짱 잘 봐라."(이등병, 웃지 말고 소대장이나 중대장 올지 모르니까 망 잘 봐)
마치 암호처럼 들리는 이 말들은 군대를 다녀온 성인 남자들에게는 병영 시절의 아련한 향수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군내 악성 사고의 씨앗인 언어 폭력의 한 사례로 분류돼 앞으로는 처벌 받을 각오를 하지 않고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지난 달 하루가 멀다 하고 병영 내 성추행 사고와 자살 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잔인한 7월'을 보낸 육군은 병영내 사고를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구타·가혹 행위 금지와 성군기 위반 금지 등을 담고 있는 종합대책 중 특히 관심을 끌고 있는 대목은 저속어와 은어 사용 제한 및 처벌 규정. 육군이 지난 11일 일선 부대에 내려보내 현재 시행중인 사고예방 종합대책은 병사는 물론 장군에게까지 적용된다.
폭언이나 욕설, 개인의 능력을 무시하거나 신체적 약점을 꼬집는 인격 모독 발언이 구체적으로 예시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육군의 정의에 따르면 폭언은 '상대방의 입장과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사납고 거칠게 하는 말'이다. 폭언, 욕설, 인격모독, 정신적 고통을 주는 비속어 등 언어폭력은 상대방의 자존심과 인격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일체의 말들로서 병영 내 악성사고의 원인이 된다고 육군은 지적했다.
'도무지 할 줄 아는 게 뭐냐' '네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등 개인의 능력을 무시하는 말과 '키는 짜리몽땅 해서∼'와 같이 신체적인 약점을 비하시키는 말들도 금지 대상이다. 또 '이등병만도 못한' '초등학교는 제대로 나왔냐'는 등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과 부모나 집안을 모욕하는 말도 모두 금지된다. 이는 모두 원칙적으로 모욕죄가 적용돼 최고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형사처벌이 남용될 소지를 없애기 위해 간부는 중징계(현역복무 부적합 처리 포함) 또는 경징계, 병은 자체징계(영창)와 기본권을 제한하는 선에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군대 특유의 과장 또는 악쓰기 답변도 척결 대상. 이에 따라 악을 쓰며 반복적으로 관등성명을 복창하는 행위, '시정하겠습니다', 턱을 들고 허공을 바라보며 쉰 목소리로 경례 하기, 유격·신병 훈련시 교관, 조교의 "알겠습니까" 따위의 말투도 불건전한 언어문화의 대표적인 예로 꼽혔다.
이에 대해 한 장교는 "저속한 용어를 순화해 병영 문화를 바꿔보겠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육군의 금지 목록에 오른 용어의 상당수는 이미 사회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말"이라며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육군 관계자는 "군의 오랜 악습을 바로잡자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지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형사처벌을 받거나 징계를 받는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며 "대책의 근본 취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사병끼리 명령·간섭도 안돼
병 상호간 계급에 따른 수직구조 척결은 육군의 대책 가운데 가장 큰 특징중 하나다.
육군은 1990년 9월부터 분대장을 제외한 병 상호간 집합, 얼차려, 암기강요, 지시, 군기교육을 금지하는 병 5대 금지 사항을 시행했지만 사례별 금지사항을 정하고, 구체적으로 처벌과 징계 내용을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육군은 지휘관과 분대장을 제외하고는 명령이나 지시, 간섭을 일절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육군은 "병 계급은 조직 내 상하관계를 구분하는 기준이 아니고 복무기간과 직무 및 병영생활 숙련도를 표시하는 기준"이라며 "따라서 입대서열에 의한 위계질서는 척결돼야 한다"고 밝혔다.
분대장을 '꼭지점'으로 하는 병영구조는 인정되지만 입대를 먼저 했다고 해서 후임병에게 명령, 지시, 간섭을 할 수 없다. 물론 선임병이 임무수행과 관련해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후임병에게 알려주고 지도하는 것은 권장하지만 이를 구실로 후임병을 괴롭히거나 질책할 수는 없다.
병 상호간 관계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전환함에 따라 내무반 내 유일한 통솔권을 갖게 된 분대장의 권한과 책임은 강화된다. 분대장은 분대의 지휘 통솔자로서 일반 병사보다 직무 수행상 상관의 위치에서 분대를 지휘 통솔하며 분대의 성패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했다.
육군 관계자는 "분대장에게 실질적인 책임과 권한을 줌으로써 제대를 앞두고 '열외 의식'을 갖는 분대장이 아니라 일하는 최고 선임병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후임병의 불손한 언행과 임무수행 등에 대한 제재가 필요할 때는 분대장에게 이를 보고하고, 분대장은 소대장에게 보고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김정호기자
● 가혹행위 금지
육군은 '정상적인 훈련 및 규정된 얼차려를 제외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타인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는 일체의 행위'를 가혹행위로 규정했다. 실제 병영 내에는 하급병을 대상으로 차렷 자세 또는 앉아서 벽 보고 있기, TV 시청 및 낮잠 금지, 웃지 못하게 하기, 축구경기 시 쉬지 않고 계속 뛰기, 1분 내 식사 마치기, 선임병보다 먼저 기상하고 경계근무 대신 하기, 노래와 춤 강요 등의 악습이 이어져왔다. 그러나 앞으로 이 같은 행위를 시키면 강요죄 등으로 형사입건 돼 1∼5년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
■ 일선 병영·네티즌 찬반 팽팽
각종 군기강 문란 행위를 막기 위해 육군이 내놓은 속칭 '짬밥 문화' 개선 대책에 대해 일선 부대 장병과 네티즌 사이에 긍정론과 부정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최근 휴가철을 맞아 서울역과 고속·시외버스 터미널 등지에서 만난 장병들은 '민주화한 군대가 강하다'는 논리와 '상하관계 및 군기가 엄격한 곳이라야 오히려 사고가 안 난다'는 주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시행 초기여서 군내 홍보 및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육군의 대책 내용을 모르는 병사들도 상당수였다.
K부대 강모(22)일병은 "뉴스에서만 들었지 부대에서는 어떤 지시도 없었다"고 말했고 이모(23)병장은 "군내 용어 순화는 현실성 없는 얘기"라며 "가뜩이나 군기가 빠진 군 현실에서 오히려 기강해이만 부추길 뿐"이라고 비판했다.
또 일부에서는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며 공식적으로는 시행이 되더라도 병영 저변으로 확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한 병장은 "비속어, 은어 사용금지는 실제 지휘관 앞에서만 이뤄지고 병사들 사이에서는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다"며 "장병간 지시, 명령, 간섭 금지 또한 군 조직의 특성을 무시한 비현실적인 조치"라고 비판했다. 윤모(22)일병은 "상부의 지시사항이라 고참들도 욕설을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중대장이 직접 병사들간 지시 및 간섭을 금지한데다 선임병과 후임병들의 만남까지 자제토록 해 장병들간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고 일선 부대 분위기를 전했다.
일부 부대에서는 지휘관의 강력한 개선 의지에 따라 병영문화 개선 교육이 강도높게 진행돼 비록 시행 초기이긴 하지만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불광동역 부근에서 만난 모사단 수색대대 소속 정모(23)병장은 "화장실, 내무반 등 부대내 곳곳에 욕설, 비속어를 금지하고 대신 순화용어 사용을 쓰도록 하는 게시물이 붙었다"며 "병영 문화가 차츰 개선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정모(22)상병은 "종합대책 실시 지침이 하달됐고 검열도 강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으며, 모사단 포병연대 김모(24) 병장은 "전체 부대원 교육, 게시판 홍보, 토론회 등을 통해 욕설은 거의 사라졌고, 속어, 비어 등 거친 군대용어도 차츰 순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 홈페이지(www.mnd.go.kr)와 군 관련 인터넷 게시판 등에도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네티즌 유모씨는 '군대가 보이스카우트냐'는 글에서 "인격존중을 이유로 군 특유의 명령체계가 사라진다면 과연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명령복종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ID '파이팅'은 "군기유지와 지휘체제 확립의 이유로 선임병에 의한 폭언, 폭행을 정당화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맞섰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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