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비전" 허와 실'동북아 경제중심 추진'과 '2만 달러 시대 진입'은 노무현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급하는 국가비전이다. 노 대통령은 25일의 공직자 인터넷 조회에서도 "동북아 구상을 역설하다가 2만 달러 시대를 얘기한다고 해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두 가지는 목표와 수단으로써 상호보완하는 관계에 있다"고 강조했다. 소득 2만 달러 달성이 동북아 경제중심으로 가기 위한 수단이라는 얘기다.
이 두 가지는 시기적으로 선후관계에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동북아 평화번영'구상을 제시했고 취임 이후 이를 핵심국정과제로 선정, 동북아 경제중심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2만 달러론'은 이보다 훨씬 늦은 취임 6개월 이후에야 집중적으로 제기했고 최근엔 이 목표 달성을 앞당기기 위한 차세대 10대 성장동력사업을 선정, 발표했다. '2만 달러론'은 이건희 삼성회장이 6월 초 신경영지침을 발표하면서 '마(魔)의 1만 달러 장벽'을 언급한 것이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비전이 적절한 국민적 합의를 거쳤는지, 또 실현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졌는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노사문제 등 사회적 갈등 조정을 위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현실 위에 너무 '화려한 모자'를 씌운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여론주도층에서는 이 비전들을 정치적 구호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또 재계에서는 "말로만 2만 달러 시대를 얘기할 뿐 노동정책 등에서 오락가락하는 등 확고한 의지가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반면, 노동계는 "분배보다는 성장제일주의의 개발시대로 돌아가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경제특구법을 예로 들며 "동북아 경제중심 주장은 환경·노동정책 등과 관련해 많은 논쟁과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2만 달러 주장도 정치적 구호로는 의미가 있을 지 모르나 박정희 시대를 연상시킬 뿐 공허하고 내용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민 한양대 교수는 "구호로서는 아주 좋으나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리더십과 정치력이 부재,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며 "그래서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얘기를 하는 것처럼 현실적 괴리가 일어나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송의영 서강대 교수는 "우리 사회가 어차피 가야할 지향점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거는 것은 괜찮다고 본다"며 "그러나 개방, 외국인 직접투자 등에서 정부의 의지가 없어 보여 이빨 빠진 구호가 될 수 있으며 '달러'라는 고무줄 잣대에 국가목표를 일치시키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 권력지도 변화·인물浮沈
참여정부 출범 6개월을 맞아 그려본 노무현 정부의 권력지도는 이전 정부는 물론 현 정부 출범 초에 비교해도 적잖은 변화가 느껴진다. 헤게모니를 둘러싼 권력 핵심 내부의 갈등설이 끊이질 않고 있고, 검찰 수사를 둘러싼 당·청와대간 파워게임도 심상치 않다.
현 정권의 주력 부대는 크게 작년 대선 캠프격인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출신 386 참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 법조인,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출신 정치인, 민주당 선대위에 참여했던 친노(親盧) 성향 의원들로 나눠진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출신의 386참모들은 청와대 1, 2차 인사 개편을 통해 요직에 대거 발탁돼 노 대통령의 친위세력으로 자리잡았다.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윤태영 대변인, 천호선 정무기획비서관, 서갑원 정무1비서관 등이 이 그룹에 속한다.
이광재 실장과 함께 노 대통령의 386핵심 참모로 꼽혔던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은 나라종금 관련 수사와 '집권당 사무총장론' 발언으로 다소 흠이 난 상태.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출신 중 시니어 그룹인 염동연씨는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고, 노 대통령의 전 후원회장인 이기명씨도 부동산 의혹 등으로 한 발 물러나 있다.
민변 출신인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고영구 국정원장, 강금실 법무장관 등은 주로 권력기관의 사령탑에 포진했다. 이들은 조직 장악력과 리더십에 대한 우려를 떨쳐내고 무난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평이다. 단, 민정수석실은 청와대 386참모진과의 불협화음설이 이어지고 있다.
통추 출신은 민주당 김원기 고문과 이호웅 의원, 이강철 대구시지부장 내정자 등. 같은 통추 출신인 청와대 유인태 정무수석과의 물밑 조율을 통해 신당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구주류측 반발로 신당 논의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추동력을 잃은 상황이다. 선대위 참여파는 민주당 정대철 대표와 이상수 총장, 이해찬 정동영 천정배 신기남 의원 등 여권 신주류 인사들. 정 대표는 굿모닝게이트로 타격을 입었으나, '청와대 386참모 음모설'로 역공을 가하며 버티고 있다. 신주류 의원들은 정권 초보다는 영향력을 잃었지만, 신당의 향배에 따라 위상이 달라질 수 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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