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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박카스 Since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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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박카스 Since 1963

입력
2003.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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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면 불혹(不惑)이니, 무릇 세상의 잡다한 유혹과 욕망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나이. 그러나 타고 난 도인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 경지가 그냥 체득되는 것은 아닐진저, 그것들이 부질없음을 알 때까지 얼마나 많은 학습이 필요한 것인지. 그러므로 불혹은 인생의 딱 중간점이다. 휘청대거나, 비로소 그렇지않게 되는 삶을 경계 짓는.인간에게도 이렇게 중요한 나이일진대, 하물며 매일매일의 명운을 알 수 없는 일개 상품에서랴. 이 달 들어 맞은 '박카스 40년'은 그래서 모른 척 넘기기 힘들다. 그 이름에서 주변의 추억이나, 최소한 광고에서 본 이미지 하나쯤 떠올리지 못하는 이는 없으리니. 게다가 생각해보라. 먹고 사는 일이 마냥 힘들던 1960년대 입맛 중에서 이 풍요의 시대에까지 살아남은 것이 또 뭐가 있는가를. (성분이 어떻건, 피로회복 효과가 어떠하든 박카스의 핵심은 그 맛과 느낌이다)

고백하건대 이런 기사는 매우 조심스럽다. 자칫 홍보성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감연히 쓰는 이유는 자명하다. 박카스에 얽힌 사연은 어느 굴곡진 인생 못지않게 구구절절할 뿐더러, 그건 바로 우리가 헤쳐 온 삶의 한 반영이기도 하므로.

상대를 제대로 알자면 인터뷰하는 게 최상이다. 더구나 인터뷰 기사란 게 옮기면 될 뿐이어서 쓰는 이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도 적다. 무엇보다 40년 세월에 담긴 구구한 사연을 속속들이 알 재간이 없으니 스스로 제 얘기를 털어 놓도록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래서 박카스를 만났다. 인터뷰 장소는… 뜨거운 여름 낮 어느 약국 앞길 쯤으로 해두자. 왜 약국 앞이냐고? 거기서 파니까.

― 우선 트집을 잡자. (인터뷰에서는 기선 제압이 중요하므로) 이름부터 웃기는 것 아니냐. 외래어 표기법 대로라면 Bacchus는 '바커스'라고 써야 옳지 않은가. 영어의 복자음은 하나만 표기하는 게 원칙이다.

"내가 태어난 게 1961년이다. (처음 알약으로 나왔다가 주사제 같은 앰플형을 거쳐 63년부터 드링크제로 바뀌었다. 그러니 정확하게는 올해가 박카스 드링크 40년이다) 당시에 그런 원칙이 있었느냐. 요새야 텔레비전이지만 그 때는 신문에도 '테레비' 아니면 '테레비존'이라고 썼다. 또 아무래도 바커스 보다야 박카스가 박력있지 않으냐."

― 간장을 보호한다면서 간장 훼손의 주범격인 술의 신 이름을 갖다 붙인 건 이만저만한 난센스가 아니다.

"글쎄, 강신호(姜信浩) 현 동아제약 회장이 독일유학 시절 함부르크 시청 입구에서 본 바커스 신상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만 알 뿐이다. 주당(酒黨)들을 지켜준다는 주신(酒神)의 이미지 정도로 봐 달라."

― 쏟아진 비난은 또 얼마나 많은가. 비싸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63년 당시 한병에 40원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판에 그 따위 물을 마시느니 같은 값의 자장면, 설렁탕이나 사 먹겠다'는 빈정거림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 3,000원쯤 하는 자장면 값에 비해 400원이면 어지간히 안 오른 셈이지."

― 카페인으로 인한 중독논쟁은 여전하다. 먹으면 인이 박힌다지 않느냐.

"병 당 카페인 양 30㎎은 자판기 커피 한잔에 포함된 양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고 하면 '커피에 든 건 자연산 카페인 아니냐'는 재반론이 나온다. 또 박카스의 효과란 게 잠깐의 각성효과나 플라시보(위약)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비도 있지만 주성분인 '타우린'의 알코올 해독, 간기능 개선 등 다양한 효능은 시간이 지날수록 학계에서 입증되고 있다."

오래 준비해온 완강한 방어논리를 깰 방법도 없지만 어떻든 이런 '학구적' 논란이 박카스를 마시거나, 마시지 않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 성 싶다. 상품이란 게 어차피 이미지로 선택되는 법이니까. 더구나 논리 보다는 감정과 느낌을 훨씬 더 신뢰하는 우리 정서 속에서야. 가령 중학교 입시과외가 기승을 부리던 60년대 밤 늦게 지쳐 돌아온 어린 아이에게 쥐어주는 박카스 한병은 부실한 먹거리를 보완하는 최고의 영양제로 여겨졌다. (실제로 박카스 안에 영양성분은 별로 없다) 그건 부모 몰래 한 줌씩 과자 대용으로 털어먹는 원기소나 에비오제 같은 비타민제와 동격이었다. 그러니 하잘 것 없는 박카스 한 병에라도 어찌 그 옛날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으랴.

― 박카스가 서민의 애환을 담아 왔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렇더라도….

"(가로 막으며) 말 나온 김에 더 해보자. 시골 부모가 아이 학교 선생님을 찾아갈 때도, 사정을 보아 준 면사무소 직원에게 인사를 전할 때도 손에 들린 건 어김없이 나였다. 또 예전 도시에서야 나무 복도를 양초로 밀었지만, 농촌 아이들은 박카스병에 담아온 참기름, 들기름으로 바닥을 맨질맨질하게 닦았다. 이제 봐도 '아, 저 광고!'라고 반색할 90년대 박카스 광고 대부분은 이

런 실제 삶의 현장을 재현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1. (한 밤의 버스종점) 버스 안에서 졸고있는 학생에게 기사 아저씨가 "이봐, 젊은이! 피곤하지?"하며 건네는 박카스 한병. ― 이 광고 이후 종점마다 "아저씨, 우린 왜 박카스 안 줘요."하고 '항의'하는 학생들이 많았단다.

#2.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주는 옛 스승을 보고 놀라며 박카스를 쥐어드리는 제자.

#3. (새벽의 골목길) 대학생 아들이 환경미화원인 아버지의 리어카를 민다. "힘들지? 이젠 따라 나오지 마라. 공부하기도 힘들텐데" "괜찮아요, 운동 삼아서 하는 건데요, 뭐." "허, 녀석." ― 이 광고는 정말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아버지는 올해 정년을 앞두고 지금도 미화원 일을 하고 있고, 아들은 그동안 군대도 갔다와 복학해 있다. 동아제약의 4년간 전액 장학금 지급 약속에 따라 바로 지난 주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받아갔다.

사실 이럴 때 은근히 쥐어주는 박카스는 단순한 드링크제가 아니다. 그 건 타우린이니, 카페인이니 하는 화학물질의 용액이 아니라 멋 적어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수백마디 말이 담뿍 담긴 것이려니, 이보다 더 진한 맛이 어디 있으랴. 한손에 감싸이는 작은 박카스병을 건넬 때는 어쩔 수 없이 손끝의 촉감까지도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게 공포의 대상이 된 적도 있다. IMF 외환위기 때였다. 그때 나돌던 서글픈 유머를 기억하리라. (구조조정설로 분위기가 흉흉한 사무실. 상사가 입사 이래 한번도 본 적 없는 다정한 미소를 띠고 다가온다. 그러더니 박카스 한병을 내밀며 "내일부터는 안 나와도 돼.")

― 좋다. 하지만 당신은 영 좋지않은 상황에도 꼭 감초처럼 끼어들지 않느냐.

"(갑자기 맥 풀린 표정이 되며) 그래서 나도 심히 괴롭다. '유명세'로 받아 들이고 있다. 아, 왜 살인이나 자살사건이 났다하면 꼭 내 이름이 나오는지.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박카스병에 청산염을 넣어 남편 정모씨에게 먹여 숨지게 한 혐의다' '여대생 최 모씨가 제초제가 든 박카스병을 오인, 마시고 숨졌다' 따위다. 심지어 박카스병으로 손목을 그은 자살사건도 있었다."

― 또 있지 않느냐.

"도박판에서는 돈 빌려주는 '꽁지', 판돈 계산하는 '딱지' 처럼 잔심부름꾼을 '박카스'라고 부른다. 아마 '야, 박카스나 한병 사와'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한 때는 박카스 박스가 뇌물상자로 활용되기도 했고. 요즘 공무원들 그런다며? '박카스 한병 건네받기도 힘든 분위기'라고. 유신 초기 데모 때부터 나온 화염병도 처음엔 소주병이 아니라 박카스병이었다는 걸 아는지."

― 진짜 창피한 얘기는 왜 피하느냐.

"예전 탑골공원이나 종묘공원에서 할아버지 상대로 박카스를 팔며 매춘도 했다는 아줌마들 말이지? 사실 그 전부터 밤에 남산길이나 고속도로변, 예비군 훈련장 근처에도 있었지. 지금은 거의 없다. 그거 알아? 박카스 아줌마들 단속할 때 일부 노인들이 거세게 항의한 거. 작은 위안거리마저 빼앗는다고. 아, 이런 얘기 그만하자."

하긴 이들조차 박카스가 워낙 우리 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어 생긴 일이니 따지고 보면 그다지 불명예랄 것도 없다. 이러다 보니 박카스 판매량이 실물경기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경기가 좋으면 회식이 잦고 그러면 이튿날 박카스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나? 실제로 IMF 직후에는 박카스 판매량이 10% 이상 급감하기도 했다. (대신 두통약과 위궤양약의 매출은 급증했다)

요즘에도 박카스가 잘 팔리느냐는 건 우문(愚問)이다. 64년 이후 39년간 부동의 최다판매 의약품 자리를 굳게 지켜오고 있으니까. 지난해만도 8%이상 판매량이 늘어 매출 2000억원을 가볍게 넘겼다. 특히 월드컵과 '지킬 건 지켜야지' 광고 시리즈로 젊은층 소비가 크게 늘었다는 게 동아제약 측의 얘기. (다만 올 들어서는 판매가 주춤하는 추세여서 긴장하고 있단다)

아무려면 어떠랴. 어차피 우리가 오랜 세월 마셔온 건 '일반 의약품'이 아니라 그것에 담긴 정(情) 아니었던가. 아다시피 신화 속의 바커스는 열정과 광기의 화신. 개발시대부터 이어온 열정과 광기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역설적으로 박카스를 통해 심신의 피난처를 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박카스다.

/편집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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