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취임 6개월을 며칠 앞두고 터진 국정홍보처 간부의 외국신문 기고 파문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노 대통령의 부정적인 언론관이 공직사회에 영향을 미쳐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고, '코드 독재'의 위험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파문은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나는 신문에서 일하고 있지만 일방적으로 언론 편을 들 생각은 없다. 언론의 문제점들을 알고 있고, 문제가 시정되지 않는 것에 절망하기도 한다. 신문 방송이 선정적이고 불확실하고 편파적인 보도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 죄의식을 갖는 때가 많다.
그러나 언론에 대한 노 대통령의 비판 내지 비난은 자주 본질에서 벗어나 감정적으로 치닫고, 사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양길승 사건'도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대통령과 청와대가 언론 탓을 하면서 '내 식구'를 싸고 도는 바람에 불필요한 마찰이 생겼다.
정순균 국정홍보처 차장의 기고 파문도 노 대통령의 대 언론 소송에서 비롯됐다. 자신의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을 보도한 신문사들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노 대통령의 처사를 외국 신문들이 비판하자 대통령을 옹호하려다가 한국 언론을 매도하게 된 일종의 사고다.
정 차장은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에 보낸 글에서 "많은 한국 기자들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기사를 쓰는 경향이 있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부 부처마다 긍정적인 기사를 기대하면서 중요하다 싶은 기자들에게 술과 식사를 대접하고 정기적으로 돈 봉투를 돌렸다… 노무현 정부는 이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언론관련 정부기관에서 외국 신문에 그런 글을 보냈다니 조직의 지능 수준이 의심스럽다. 우선 그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일부 그런 경향이 있거나 있었을지 몰라도 보편적인 사실로 단정할 수는 없다. 자기나라 언론인을 그런 식으로 매도하면서 대통령을 옹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충성파가 등장했다는 것은 불길한 징조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에는 많은 언론인 출신 공직자들이 정권홍보와 언론탄압의 하수인 노릇을 했다. 한국의 독재와 인권탄압을 비판한 외국 언론사를 찾아 다니며 항의하고 해명하고 로비를 시도하는 것도 그들의 임무였다. 이번 사태는 과거의 악몽을 되살리게 한다.
정순균 차장도 언론인 출신이다. 기자 출신인 그가 어떻게 언론과 기자들을 모욕할 수 있느냐는 비난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자 출신 공직자가 대통령과 언론의 비생산적인 대결에 바람직한 조언을 하는 대신 무리한 과잉충성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그의 개인적 자질 뿐 아니라 공직사회의 분위기에도 이상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노 대통령이 들으면 깜짝 놀라겠지만, '코드 독재'의 위험이 느껴진다. 언론이 대통령을 마구 때리고, 야당 대표는 "대통령 잘못 뽑았다"고 주장하고,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겠느냐"고 막말하는 세상인데, 무슨 독재냐고 억울해 할 일이 아니다.
정부안에서, 또는 대통령 주변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할 말을 못한 채 숨 죽이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독재다. '개발 독재'만 있는 게 아니라 '개혁 독재'도 있고, '코드 독재'도 있을 수 있다. 또 독재란 아무리 그럴듯한 말이 앞에 붙어도 미화할 수 없는 것이다.
노 대통령 취임 6개월을 지내며 그의 장점과 단점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누구나 약점이 있지만 대통령은 반드시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보좌진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같은 생각, 같은 주장을 계속하다 보면 약점이 보완되지 못한 채 치명적으로 심화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의 6개월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정수행을 잘 하고 있다"는 의견이 30∼40% 정도다. 낮은 지지도는 사실 문제가 아니다. 얼마든지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나라 언론을 매도하는 글을 외국 신문에 기고하면서 대통령을 옹호하려는 어리석은 공직자가 등장하고, 그런 사람들이 용인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대통령은 '코드 독재'의 위험을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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