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신분석학으로 읽어본 질병]<6>좋은 의사 좋은 환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신분석학으로 읽어본 질병]<6>좋은 의사 좋은 환자

입력
2003.08.25 00:00
0 0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매우 비합리적인 존재로서 때로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의사와 환자간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환자들이 아주 권위주의적인 의사를 존경하며 매달리던 때가 있었다. 그 의사가 뭔가 많이 알고 있어 자신의 병을 확실하게 고쳐줄 것 같은 강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반면에, 겸손하고 확정적인 말을 아끼는 의사에 대해서는 실력이 없을 것 같아서 환자가 믿음을 가지기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심지어 환자에게 대놓고 반말로 응대하고, 불친절하며, 환자가 질문을 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는, 권위적인 명령형 의사가 왠지 모르게 더 믿음직하게 보여서 잘 찾아 왔다고 생각한 환자들도 있었다. 상당수의 의사들도 그런 식의 방법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의료를 일종의 '고객 서비스'로 받아들이게 된 지금도 세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의사보다 위압적인 모습의 무뚝뚝한 의사를 더 좋아하는 환자들이 꽤 있다. 일부 의사들도 아직 치료의 기본을 교육, 설명, 설득이 아닌 일방적인 명령, 예를 들면 "약 주는 대로 드시면 되요!"에 의존한다.

도대체 어떤 마음에서 겸손하고 친절한 의사보다 권위주의적인 의사가 실력이 더 있다고 생각하게 될까? 위압적인 의사와 그에게 굴종하는 환자는 빛과 그림자의 관계와 같다. 어떻게 보면 궁합이 딱 맞는 것이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억누름으로써 얻는 심리적인 혜택이 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사정하며 매달림으로써 얻는 심리적인 보상이 있다. 전자를 가학적(加虐的)이라고 표현하고 후자를 피학적(被虐的)이라고 한다. 가학적이라 함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즐거움을 얻는 것이고, 피학적이라 함은 스스로 고통 받음으로써 오히려 즐거움을 얻는 무의식적인 행위를 말한다.

가학적인 의사와 피학적인 환자의 만남은 좋은 치료를 방해한다. 의사는 위압적인 명령을 통해 환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헛된 기대를 하며 막상 고려해야 할 치료적 조건들을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는다. 환자는 '신과 같이 우러러 보이는' 의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치료가 다 잘 될 것 같은 환상을 키우며 스스로 확인하고 실행해야 할 것들을 찾아 하지 않는다. 환상의 위약효과가 떨어지면 치료는 교착상태에 빠진다.

의사는 환자를 명령에 복종하는 존재가 아닌, 어려움에 빠진 독립적 개체로서 도와야 한다. 환자도 의사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퇴행적으로 매달려서 의사가 도망가 버리고 싶은 심리적인 저항을 느끼게 하면 현명하지 못하다. 현대 의료에서는 누가 누구에게 지시하는 상하관계가 아닌, 환자와 의사가 한 팀으로서 힘을 합쳐 병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바람직하다.

정 도 언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