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변사체가 발견되면 형조의 낭관이나 고을 원님이 의생(醫生)을 동행해 검시(檢屍)를 했다. 그 의생이 시간여행을 통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법의관을 부검실에서 만난다면 어떤 대화가 오갈까?조선의 의생 : (부검을 보고 경악하며) 아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를 이렇게 마구 훼손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이오?
현대의 법의관 : 시신의 외표만 보아선 사인을 제대로 가리기 어렵습니다. 우리 연구소에선 매년 3,000건의 부검을 하지요. 조선이 유교문화에 그토록 집착하지 않았어도 사인 규명이 보다 명백했을 것입니다.
조선 의생 : (놀라며) 그래서 이제 모든 죽음의 원인을 다 알 수 있소?
현대 법의관 : 다 안다면 신이겠지요. 어쨌든 고도로 발달한 현대 의술과 과학은 살인의 흔적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물론 법의관이 점쟁이가 아닌 이상 시신이 발견된 현장의 정황도 매우 중요합니다.
조선 의생 : 하지만 이 부검실에서 한 발도 나가지 않았잖소! 조선에선 검험관부터 사건 관계자까지 모두 참가한 가운데 현장에서 검시와 심문이 이루어졌소.
현대 법의관 : (당황하며) 사실 그게… 문제는 문제입니다. 애초에 경찰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정보가 누락되면 오판할 여지가 있지요.
조선 의생 : 그렇다면 누가 책임을 지는 것이오? 조선에선 검험 책임자인 군수나 현령이 삭탈관직될 수도 있었소. 억울함을 없게 하라는 것이 조선에서 신주무원록, 증수무원록 등을 펴낸 이유요.
현대 법의관 : 제도적 한계는 있습니다. 그래도 죽은 이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사명감만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 의생 : 그렇소. 누군가는 산 사람 아닌 죽은 이의 권리를 지켜야 하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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