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생명을 다루는 반면 죽음을 다루는 의사들이 법의학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법의관 20명, 전국 8개 의대의 법의학자 등을 통틀어봐야 서른 명 정도에 불과하다. 인구 비율에 따라 300∼400명이 필요한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왜 이 일을 택했느냐고 물으면 "글쎄, 돈도 못 버는데 왜 그랬을까요"라는 자조 섞인 소리나 "나 하나쯤 임상의 안 된다고 큰 일 나랴 싶어서요"라는 농을 듣기 십상이다.
그들의 판단은 어느 한쪽의 권리와 민감하게 관련된다. 고려대 의대 황적준 교수가 1987년 박종철군의 고문치사를 발표하고, 이윤성 교수가 강경대군의 구타사망을 규명한 것처럼 거대한 정치사회적 변화를 불러일으킬 때도 있다. 이한영 국과수 법의학과 과장은 "허일병 자살사건 같은 경우 법의관은 무고한 사람을 살인자와 살인방조자로 몰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수사현장에서 배제돼 오판할 수 있는 위험부담이나 어느 한쪽의 원망을 들을 수 있다는 고충을 토로하지만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말이 없는 사자(死者)를 대변하는 것이 바로 법의학자들이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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