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꿈 말입니까? 테레비(TV) 방송국에서 방송원(아나운서)으로 일하는 거지요."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북측 응원단 환영 오찬행사가 열린 23일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만난 평양연극영화대학 방송과 3학년 길은정(19·사진)씨의 수려한 외모는 남한 여대생들과는 또 다른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두 갈래로 딴 머리, 쌍꺼풀이 진 큰 눈과 오똑한 콧날, 수수하면서도 이국적인 마스크의 길씨는 기자가 "남쪽 여대생들 사이에 아나운서의 인기가 높다"고 말하자 "북에서도 방송원에 관심이 높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길씨는 "북에서 방송원의 일은 체육, 사회문화, 경제 등 부문별로 나눠져 있다"면서 "그중에서 저는 사회문화 분야 방송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 수업시간에 방송개론, 화술 등을 주로 배우고 있다는 그는 졸업반이 되는 내년에 국가졸업시험을 치른 뒤 조선중앙TV에 지원할 생각이다. "방송과에는 16명이 공부하고 있지만 남학생은 3명에 불과하다"고 밝힌 길씨는 남쪽 남학생들에 대한 인상을 묻자 "남북이 다르지 않은데 남쪽 남자들이라고 차이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대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평양 시내 방 네 칸짜리 20층 아파트에서 부모님,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는 길씨는 "여름방학을 맞아 '자체학습'을 하던 보름 전쯤 응원단원으로 선발됐다는 통보를 받고 1주일 동안 모여서 응원 연습을 했다"고 소개했다. "대구에 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었고, 그저 '무척 더운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견딜만하다"면서도 에어컨 바람이 흘러나오는 오찬장에서 흐르는 콧잔등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꽤나 더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인공기 훼손 논란'과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길씨는 대부분의 평양 여대생처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6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챙겨 학교에 가서 1시간 정도 혼자 공부를 하다 오전 8시부터 수업을 듣는다고 한다. 토요일에는 평양 중심가인 창광거리의 인민대학습당 등에 가서 '자체학습'을 하고, 일요일이나 돼야 '동무'들과 만나 음악감상도 하고 영화도 본다. "최근 '민족의 운명'이라는 영화를 감동적으로 봤다"는 길씨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십니까"라고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그가 가장 즐겨하는 것은 수영과 화술. "이번 방학 때 어디 놀러 갔느냐"는 물음에 그는 "평양 창광원에 있는 수영장에 자주 다녔다. 어릴 적 부모님께 수영을 배워 잘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화술'은 훌륭한 방송원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에 일찍이 생활화했다고 하는데, "또래 동무들과 사이다 같은 청량 음료를 마시거나 가장 좋아하는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바로 '화술'을 체득하는 지름길"이라고 설명했다.
오찬장에서 주위 사람들이 따라주는 맥주를 입술에 추겨 맛 보는 그에게 "전에 맥주를 마셔본 적이 있느냐. 북쪽 여대생들도 맥주를 마시느냐"고 묻자, 그는 말없이 가벼운 미소를 지어 술을 마셔본 경험이 있음을 내비쳤다. 1시간30분 동안의 오찬 행사가 끝난 후 길씨는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메모와 아쉬움을 남긴 채 발걸음을 돌렸다.
/대구=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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