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국의 한 대학교에서 한국어과 교수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서울에 왔다. 1998년 한국에서 같이 공부했던 이 친구는 몇 년만의 한국방문인데도 나를 보자마자 "한국이 요즘 정말 IMF 외환위기 때만도 못하냐"고 아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중국에서 한국 신문을 계속 읽었는데 반가운 소식은 별로 없고 정치, 경제가 다 불안하다고 해 마음이 답답하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 봐도 활력이 없는 것 같다고도 했다.나는 한국이 5년 전만 못하다고는 할 수 없고 그 때보다 좋아진 것도 많다고 대답했다. 거창한 얘기는 차치하더라도 작은 일상생활의 면면에서 그러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예로 들어 보자. 예전에는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나란히 서서 갔지만 지금은 대부분 한 줄로 서 간다. 남을 배려해 주는 예절이 생활화한 것이다. 화장실 등 공공장소도 더 깨끗해졌다. 가끔 길거리에서 수준 높은 예술 공연을 보고 하루가 풍요로워질 때도 있다. 이전에 젊은 사람들의 휴일나들이는 먹고 마시기 위한 것이었지만 요즘은 운동이나 건전한 취미생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민참여, 환경보호, 인권 보호(외국인의 인권도 포함해서)등 많은 면에서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졌고 전보다 더 선진국에 가까워진 모습이다.
물론 경제가 호황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문화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한국은 고속성장이 주춤하고 있어도 국민들의 전체적인 문화 소양은 계속 높아지고 시민 사회도 더 성숙해지고 있다. 문화의 성숙은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며, 경제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경제 침체라고 한숨 쉬기에만 바빠 이러한 발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전보다 더 열심히 살려고 하는 한국인들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더 성숙해진 한국인들의 문화 때문에 경제 거품이 가라앉으면 새로운 성장이 꼭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언론매체에는 부정적인 기사들로 가득 차 이를 보거나 읽는 사람들은 더 힘을 잃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매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작년 월드컵 때만 해도 TV나 신문에서 응원문화를 칭찬하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대단한 축제의 장으로 몰려가지 않았는가. 긍정적인 얘기를 들을 때 더 신이 나서 굉장한 잠재력을 보여주는 민족이 한민족이다. 지금 물론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많지만 칭찬할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매체들이 희망이 되고, 힘이 되는 얘기를 많이 전했으면 좋겠다.
여름 막바지 축축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그 뒤에 한국 특유한 청명하고 상쾌한 가을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금방 환해지는 느낌이다.
왕샤오링 중국인
경희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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