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이 위기를 맞고 있다. 부산항은 지정학적으로 '유럽-싱가포르-부산-북미'로 이어지는 대륙간 기간 항로 상에 위치한 천혜의 항만. 그러나 최근 잦은 운송 파업과 경쟁 항만의 급성장, 시설 노후화 등 안팎의 악재로 위상이 갈수록 추락, 동북아 허브로서의 꿈에서 오히려 멀어져 가고 있다. 해운업계에서는 부산항이 세계 10대 항만이었다 1995년 지진 여파로 30위권 밖으로 추락한 일본 고베항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추락하는 대외 신인도
5월 화물연대의 파업이 있은 후 국내 해운 대리점에는 기항지 변경을 타진하는 외국 선사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실제로 이달초 2차 파업 조짐이 보이자 일부 선사들은 중국 등 인근 항만으로 기항지를 변경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업계는 파업으로 외국선사의 20% 이상이 떠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운대리점 D상선 관계자는 "비용 절감도 중요하지만 제때에 배달하는 것이 물류의 생명"이라며 "외국 선사들이 파업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싱가포르나 중국 등 주변 기항지로 옮기겠다고 통보해 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리점 관계자는 "최근의 잇단 파업으로 10여년간 쌓은부산항의 대외 신인도가 3개월 만에 물거품이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상하이 등 경쟁 항만은 성장
부산항은 가뜩이나 상하이, 선전, 칭다오 등 중국 신흥 항만의 급성장으로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부산항이 세계 3대의 컨테이너 항만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총 물동량의 41%를 차지하는 환적 화물의 증가 덕이었다. 환적화물은 임시로 거쳐가는 제3국간 화물로 부가가치가 매우 높다.
그러나 중국이 대규모 컨테이너 부두를 증설하면서 평균 30%가 넘는 성장세를 보였던 부산항의 환적화물 증가율이 올해 들어선 10%대로 추락했다. 특히 7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전년대비 1%가 감소했다. 이에 따라 세계 3위이던 부산항 물동량이 7월에는 상하이항과 선전항에 이어 5위로 밀려났다.
여기에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상당수 외국 선박들이 부산항 대신 아예 중국으로 직기항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부산항 생산성 저하 요인도 문제
부산항 시설 인프라도 중국의 신흥 항만과의 비교 우위에서 밀리고 있다. 현재 부산항 터미널의 일부는 수심이 12.5m 이하에 불과 5,000TEU 이상급 대형 선박은 수용하지 못한다. 최근에는 8,000TEU급 선박까지 등장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컨테이너 전용 야적장이 협소한 것도 문제다. 상하이 등 경쟁 항만에 비해 부산항은 야적장 규모가 턱없이 작아 컨테이너의 50%를 부두 밖의 외부 야적장에 임시로 쌓아 두었다가 재반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불필요한 시간이 소요되고, 셔틀 비용까지 추가돼 선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컨테이너 전용 부두도 부족해 일반 부두에서 컨테이너를 처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우종균 책임연구원은 "파업에 영향을 받지 않는 안정적 항만운영과 인프라 보강 및 물류 시스템 등 소프트웨어의 선진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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