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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수원 산림청 임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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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수원 산림청 임업연구원

입력
2003.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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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송홧가루 분분하던 2001년 음(陰) 사월 어느 손 없는 날이었다. 당상(堂上) 위엄에 판서 반열에 든 대감의 혼사. 근동에서 올방자(책상다리) 틀고 앉았던 이들이 모두 모였고, 경사 떡에 혹한 말 많은 시정배들도 적지는 않았을 터. 양가 혼주로 나선 삼척시장과 보은군수의 청홍초 불밝힘으로 시작된 예식은 전안례 교배례를 거쳐 시종 기품있게 치러졌고, 강원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준경묘(濬慶墓) 솔숲에 모인 하객들 가운데 정부인(貞夫人)의 단아함에 토를 다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는 후문. 600여 년 세월을 지켜 하늘의 연분으로 만난 정이품송(正二品松)과 미인송이다. 자손이 번창함도 하늘의 뜻! 지난 22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 산림청 임업연구원 임목육종부(옛 임목육종연구소) 묘판 한 켠에서는 이들에게서 비롯된 2세목 120여 그루가 금지옥엽 여린 생명의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정이품의 위용

조선왕조실록을 비롯, 문헌 어디에도 세조가 품계를 하사했다는 기록은 없다. 조카(단종)에게서 왕위를 찬탈한 지 10년째 되던 해인 1464년, 신병 치료차 행차한 세조에게 가지를 들어 길을 내준 공(功)이라는 믿기지 않는 전설만이 전해질 뿐이다.

하지만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법주사 입구의 소나무는 긴 세월 '정이품송'으로 불려왔다. 그것이 남루한 정권의 정통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당대 위정자들이 은밀히 추어준 의인화였는지, 왕실 주연의 취중 농이 흘러 굳어진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정이품송의 위풍이 따지기 좋아하는 이들의 구접스러운 시비를 누르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15m를 뻗어 오른 곧은 주간(柱干)에 삿갓을 얹은 듯 펼쳐 든 가지들, 전정가위를 댄 듯 엄숙한 그 대칭의 미학에 나라는 또 하나의 훈장(천연기념물 103호)을 얹기까지 했다.

정이품송은 하지만, 세월의 무게에다 솔잎혹파리 등에 등 병해충, 90년대 어느 해 태풍으로 큰 가지가 꺾이면서 노쇠의 기미가 뚜렷해졌다. 씨앗을 받아 인공발아를 한다, 가지로 접을 붙인다 등 대를 잇기 위한 부산한 시도들이 시작됐다. 벌써 10여 년 이쪽 저쪽 전부터의 일이다.

정부인 간택

'인문의 도(道)'를 들어 기왕의 정이품송 자목(子木) 보기에 시비를 걸고 나선 이들이 있었다. 그것은 뜻밖에도 현미경으로 DNA 유전정보를 따지는 것을 일로 삼는 이학자들, 특히 임업연구원 최완용(50·임학박사) 임목육종부장이 선봉이었다.

품계로 보건대 정이품송은 남자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시비의 출발이다. 한 나무에 수꽃과 암꽃이 함께 피고 바람으로 수분하는 소나무 특성에 비춰 정이품송이 맺은 씨앗은 모계혈통을 따른 것일 뿐, 부성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대감'의 후손으로 대접할 수 없다는 엄정한 논리가 성립됐다.

정이품송의 암수 꽃가루를 자배(自配·selfing)하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이 역시 근친혼의 금기를 어기는 것인 데다, 생물학적으로도 자식약세(自殖弱勢·동체 교배시 2세가 부실함)의 한계 때문에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배필 간택은 그래서 시작됐다. 연구원은 송림 육종을 위해 1959년부터 83년까지 24년간 전국 산과 들을 누비며 확보한 우량 소나무 524그루를 접목·복제해 만든 '혈통보존원(클론뱅크)'에서 간택작업을 시작했다. 체력과 생식력 체격 등을 감안해 이 가운데 50여 그루를 선정했고, 2세 검증을 통해 그 형질이 제대로 유전되는지 따지고 또 따졌다.

이를 두고 최 부장은 "어미가 족집게 과외를 받고 성형수술을 한 것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자식까지 본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간택된 정부인송은 울진 소광천에서 2그루, 삼척 준경묘에서 2그루, 평창에서 1그루 등 5그루. 준경묘 정부인송은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빼어난 키 30m 허리둘레 2.1m의 미인송이었다.

풍류의 부활

꽃이 맺히기 일주일 여 전부터 정이품송의 수꽃과 정부인송의 암꽃에는 종이막 처럼 생긴 '정조대'를 씌웠다. 부정(화분 오염)을 막기 위해서다.

소나무는 수분된 지 1년 만에 수정되고, 수정된 해 가을에야 씨앗이 맺힌다. 발아는 다가오는 봄의 일. 그래서 현재 연구원 묘판의 2세목들은 파종한 지 6개월 남짓 된 키 5∼10㎝ 내외의 금지옥엽이다.

2세목들은 수천 그루의 뭇 묘목들 틈에 끼어 비표로서만 구분된다. 그리고 비표는 연구원 내에서도 최 부장 외에 단 한 사람만이 식별할 수 있다. 그 한 사람인 한상억 박사는 "손을 탈까 두려워서 숨겨두는 것"이라고 했다. 다소 걱정스러운 점은 다른 우량 소나무들의 인공교배에서 나온 씨앗들에 비해 정이품송 부부의 씨앗 발아율과 생장속도가 다소 더디다는 점이다.

한 관계자는 "소나무 생식능력은 수령 90∼150년 정도에서 절정이었다가 이후 쇠퇴한다"며 "정이품송의 꽃가루 기능이 약해 발아·생장 면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했다.

연구원은 이 달 중으로 2세목의 DNA 지문검사에 착수, 일일이 친자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적자로 판명 난 묘목들은 2년목(키 20㎝)부터 조림지로 떠나는 것과 달리 10년 가량 연구원에서 자라 수형이 잡힌 뒤 청와대와 독립기념관, 감사원 등 상징적인 장소들로 입양될 예정이다.

우리 조상들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나서 청솔가지 금줄 속에서 첫 날을 맞았다. 그들은 솔가리 땔감으로 지은 밥으로 살다가 소나무 칠성판에 누워 흙으로 솔숲으로 귀의했다. 그래서 나무의 귀공자(木+公), 소나무(松)는 사군자와도 또 다른 격으로 민족과 피를 교류해왔던 모양이다. 그 소나무를 인격화해 품계까지 붙여 칭송했던 선인들의 멋이 21세기 부박한 패스트푸드의 세상에 뿌리내리고 있다.

/수원=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류효진기자

"토종 소나무에 애정 가졌으면"/최완용 임목육종부장

정이품송의 배필 찾기 시도는 예부터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서원리에는 애당초 '정부인송'으로 전해져 온 소나무(천연기념물 352호)도 있다.

하지만 키 15m 허리둘레 4.5m의 그 자태가 육림과 우수종 보존·보급을 일로 삼는 전문가들의 눈에는 정경부인 감으로는 미흡했었나 보다. 그 나무가 간택에서 누락되자 개중에는 준경묘 미인송 배필맞이를 일러 '소실보기'라며 폄하한 이들도 있었다. 해서 지난해에는 충북산림환경연구원이 서원리 소나무와 지각결혼식을 치러 주기도 했다. 이를 두고 임업연구원 최완용 임목육종부장(사진)은 "그도 나쁘지 않다"며 웃었다. 모두가 정이품송의 전설에 멋을 더하는 시도들이겠기 때문이다.

최 부장은 "과학의 눈으로 보면 우스꽝스러울 수 있지만 이 같은 시도로 우리 토종 소나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되살아 나면 그것으로 된 것"이라고 말했다. 송편을 찌면서도 적송·해송 같은 우리 소나무를 두고, 60년대 황폐한 산림을 복구하기 위해 미국에서 들여 온 리기다소나무(삼엽송) 잎을 따서 쓰는 세태가 안타깝다고도 했다.

그는 "소나무는 민족수이지만 근·현대 전란기를 겪으면서 울진지역 금강송과 같은 곧고 우람한 소나무가 많이 황폐화했다"며 "좋은 소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일은 우리 뿐 아니라 민족 모두의 책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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