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비가 멈춘 21일 오전 경복궁 흥례문 매표소 앞. 한국인과 미국인 6명이 다정스러운 모습으로 모여 있었다. 경기 일산에서 온 남대우(65) 최영자(58)씨 부부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딸 성림(31)씨와 미국인 사위 그레그(35)씨, 그리고 사돈 프랭크(63) 티나(57)씨 부부를 초대해 한국 문화를 알려주고 싶다며 경복궁을 찾았다. 한국말이라고는 간단한 인사만 가능한 사돈들에게 경복궁을 안내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닐텐데도 남씨는 여유만만.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 '문화유산해설사'라는 이름표를 목에 건 전영규(58)씨가 영어인사를 하며 다가오자 남씨의 여유가 이해될 법 하다.서울시가 4일부터 운영하고 있는 4대문안 도보관광코스가 인기다. 덕수궁/정동코스, 경복궁/인사동코스, 종묘/창경궁코스, 대학로코스, 남대문/명동코스로 나뉘어진 관광코스 중 특히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 도심 고궁과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는 고궁 코스가 각광을 받고 있다.
서울시 홈페이지(www.seoul.go.kr)에서 오전 10시, 오후 2시, 3시 중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택해 3일 전까지 예약하면 고궁 입장료만 내고 해설사의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이유. 문화유산해설사는 별도 선발 과정을 거친 후 3개월 동안 역사와 문화유적에 대한 이론과 실습 교육을 받았다.
흥례문을 들어선 남씨 일행이 영제교(永濟橋), 근정문(勤政門)을 지나 근정전(勤政殿) 앞에 서자 프랭크, 티나씨는 자못 진지해졌다. "가운데 길은 왕만 다닐 수 있었습니다. 여기 조금 낮은 길은 문신과 무신들이 다니는 길이구요."(전영규) "조선시대는 철저한 계급사회였다고 들었는데 다니는 길 마저 달리 두었던 것이군요."(프랭크) "저 난간에 새겨진 동물들이 자꾸 끌리는데요. 뭘 뜻하는 거죠."(티나) "동서남북 네 방향을 지키는 용, 호랑이와 상상 속 동물 주작, 현무입니다."(전영규)
남씨는 "해설사 없이 와서 짧은 영어로 경복궁을 안내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며 "영어로 술술 풀어내는 해설사의 꼼꼼한 설명이 고민을 말끔히 씻어주었다"고 말했다.
일행은 왕이 머물렀다는 강녕전(康寧殿)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는 다른 곳과 몇 가지 차이점이 있는 데 무엇일까요"(전영규), "다른 곳은 지붕 끝이 굵게 돼있는 데 여기는 그렇지 않은데요."(티나) "다른 곳과 구별해야 할 중요한 장소가 아닐까요."(프랭크) "맞습니다. 왕이 자던 곳이라서 함부로 들어 와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용마루 없이 지붕을 처리한 것이죠. 왕비가 머물던 교태전도 마찬가지입니다."(전영규)
후텁지근한 날씨인데도 이들은 해설사의 설명에 눈과 귀를 모았다. 전씨는 "방문객과 대화를 나누며 설명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게 내용을 전달하는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연회장으로 쓰인 경회루와, 왕과 가족이 산책을 즐겼다는 향원정을 바라보며 프랭크씨와 티나씨는 "뷰티풀" "원더풀"을 연발했다. 이들은 명성왕후 시해사건이 일어났던 건청궁(乾淸宮) 터 앞에서 일제 치하의 역사적 상황과 명성왕후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으로 답사를 마쳤다.
평소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는 프랭크씨는 "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으로 한국 문화를 좀 더 깊이 알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울시 관광과 최선혜씨는 "지금까지는 내국인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나 앞으로는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참가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