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지난 6개월간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평가하기 위해 24일부터 정책 분야별로 4차례에 걸쳐 대담을 게재한다. 대담에서는 청와대·여당의 핵심 관계자와 학계 및 한국일보의 전문가들이 차례로 정부 정책의 성과와 문제점을 놓고 토론을 벌인다. 외교, 경제, 언론정책, 정치의 순으로 계속되는 이번 대담은 논란이 많았던 새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객관적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시도다.■ 대담 순서
1. 북핵문제와 정상외교: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 vs 노진환 한국일보 주필
2. 성장이냐, 분배냐: 정세균 민주당 정책위의장 vs 김광두 서강대 교수
3. 언론정책: 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 vs 이병규 한국일보 논설위원
4. 리더십과 국정운영: 이상수 민주당 사무총장 vs 손호철 서강대 교수
라종일(羅鍾一) 국가안보보좌관
서울·63세
서울대 정치학과·영국 캠브리지대 정치학박사
경희대 정경대학장
15대 대통령직인수위 행정실장·국정원 1차장·주영국대사
노진환(盧縉煥) 한국일보 주필
경남 진주·57세
고려대 정외과·미국 남가주대(USC) 정치학과
한국일보 정치부장·수석논설위원
외교·통일·법무부 자문위원
노진환 주필=노무현 대통령의 외교 능력은 취임 전부터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제 참여정부 출범 6개월을 맞아 대외정책의 성과를 따져보지요.
라종일 보좌관=새 정부의 외교과제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한미관계였습니다. 사실 나는 몇년 전부터 한미관계가 새로운 갈등관계로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햇볕정책을 추진한 후 우리가 과거에 비해 대북정책에서 상당한 이니셔티브를 쥐기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한미관계는 어느 정도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 문제를 잘 관리해왔다고 봅니다.
노=노 대통령이 정상외교를 서두른 이유는 지난해 10월 북한이 농축 우라늄 방식의 핵 개발을 시인함으로써 촉발된 2차 북핵 위기를 빨리 해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는 무엇보다 노 대통령의 반미 이미지를 불식하고 또 미국이 노 대통령에 대해 갖고 있던 불안감을 해소한 것이라고 봅니다.
라=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노 대통령은 사이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둘 다 복선을 깔지 않고 화끈하게 할 말을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노=그러나 두 정상이 채택한 공동성명은 '북핵 문제 전개상황을 보며 남북 교류협력을 추진한다'고 했습니다. 국민의 정부 당시에 비해 우리의 이니셔티브가 약화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 미국측 요구에 따라 '북한의 위협 증대 때 추가조치를 고려한다'는 문구도 들어갔습니다. 사대외교의 논란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라=이해할 수 있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상식의 문제입니다. 안보 위협이 있을 때 경제협력을 계속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교섭과정을 지켜본 바로는 미국측이 우리 입장을 대폭 수용했습니다.
노=북핵 문제를 계기로 미국이 우리의 대북 지렛대 역할을 인정하는 점은 눈에 띕니다. 역으로 말하면 우리의 노력으로 미국내 강·온파중 국무부의 콜린 파월 장관, 리처드 아미티지 부장관과 같은 대화론자에게 상당한 힘을 실어준 것입니다.
라=중요한 것은 미국과 관계도 탄탄하게 됐지만 북한과의 관계도 상당히 활성화됐다는 점입니다. 한미, 남북 등 2개의 관계가 상충하지 않고 상생하도록 관리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북한과 좋은 관계를 가진 것이 다자회담 실현에 도움이 됐습니다.
노=최근 남북관계를 보면 6자회담도 시작됐고, 철도·도로 실무접촉 재개와 함께 경협합의서도 발효했습니다. 앞으로 남북관계는 제도화라는 방향으로 갈 것 같습니다. 국민동의 없이 북한에 돈을 준 것과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고, 절차의 투명성과 법과 제도를 갖춘 남북관계가 자리잡는 것 아닌가 하는 희망도 갖게 됩니다.
라=국민적 합의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노=방일외교에서는 논란이 많았습니다. 현충일에 일본 천황을 만난 것도 그렇고, 방일기간에 유사법제가 통과됐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유감 표명을 제대로 못한 것도 외교적 혼선에 따른 결과 아닙니까.
라=외교적으로 당장 닥친 현안과 외교의 의전을 조화시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양측 일정이 워낙 빡빡해서 현안처리쪽으로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실속 없는 사죄를 받느라고 현안문제 처리에 손상이 가면 성공한 외교교섭이라고 할 수 없지요.
노=6자회담이 시작됩니다. 최대 외교현안인 북핵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봅니까.
라=북한이 핵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원칙에는 모두 합의했습니다. 북한도 안보 문제만 해결되면 핵은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해결하는 형식과 절차에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담의 형식이 참 어려웠는데 이를 넘어섰으니 조심스럽게 낙관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노=그러나 문제는 선후(先後)개념입니다. 한·미·일은 핵을 먼저 포기를 하라는 것이고 북한은 이를 내정간섭, 공화국 압살이라고 하면서 먼저 체제보장을 하라고 주장합니다. 절충점을 찾는 일이 중요합니다.
라=그런 걸 찾으려고 회의를 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제일 큰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있다는 것인데 핵무기를 가진 채 국제사회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북한이 6자회담의 기회를 상실하면 우리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간곡하게 했습니다.
노=북한은 6자회담 대표로 북미통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대신 아주통인 김영일 외무성 부상을 내세웠습니다. 이는 회담에서 중국에 의존하려는 전략인 것 같습니다. 미국이 핵심적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6자회담을 상당기간 지속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라=몇번의 회담으로 타결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회담으로 푼다는 것입니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의 주된 형식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6자회담의 장래에 대해서도 기대를 걸어볼 수 있습니다. 지역의 안보체제에 대해 6자가 함께 얘기해본 적은 없습니다. 이 회담을 반영구적 형태로 가져가는 것도 지역 안보와 안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노=정부는 북핵 문제 타결 후에도 6자회담의 틀을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틀로, 나아가 동북아 다자안보의 틀로 삼겠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라=유럽의 경우를 보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라는 지역안보협력체제가 있어 독일통일에도 좋은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동아시아는 한미동맹, 미일동맹 등 미국과의 양자조약으로 안보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런 양자적 안보협력에 더하여 6자회담이 지역안보 레짐(Regime)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나, 그런 희망은 갖고 있습니다.
노=8·15 경축사 문제를 얘기해보겠습니다. 노 대통령은 '10년안에 자주국방'이라는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주한미군과 결부돼 민감한 시기에 공공연히 자주국방을 얘기한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외교보좌진이 그런 형태로 보좌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라=협의를 거치지 않고 그런 언명이 나오겠습니까. 1990년대에 들어서 미국의 전쟁 개념은 달라졌습니다. 미군 전략의 변화는 우리 안보뿐 아니라 정치, 경제에도 부정적 파장을 주는데 이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대비를 해야 합니다.
노=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드러내기보다는 내부적으로 할 사안이었다는 점입니다.
라=국민이 전부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의 자주의식은 강하지만 의지만으로는 안됩니다. 그런 역량을 갖추는데 희생을 해야 하고 돈을 더 써야 하므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노=최근 북한의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참가 문제와 관련, 라 보좌관은 18일 "정부차원의 입장표명은 곤란하다"고 했는데, 노 대통령은 다음날인 19일 유감표명을 했습니다. 혼선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유감 표명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라=남의 국가나 체제의 상징물을 태우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놓고 지나치게 반응하면 오히려 그런 행동을 한 이들에게 힘을 실어줍니다. 때문에 나는 그렇게 말했고 추후 관계부처 대책회의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회의에는 안보라인 말고 다른 곳도 참석했고, 유니버시아드 대회 성공과 6자회담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컸기에 노 대통령이 유감 표명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노=그러나 이런 일들 때문에 진보적 젊은 세대로 구성된 NSC사무처와 라 보좌관 사이에 이견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입니다.
라=이견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무처 직원들은 나보다 20세 정도 아래여서 경험은 적지만 문제의식은 훨씬 더 참신합니다. 어려운 실무문제를 잘 처리해왔고, 나는 지금 좋게 평가합니다.
노=마지막으로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남북관계 제도화가 핵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평화와 번영은 수평적 개념보다는 선후 개념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라= 경제교류 등의 활성화는 안보에 좋은 여건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경제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면 전쟁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번영과 평화는 그런 식으로 연결됩니다. 이 정책은 햇볕정책과 차별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라고 이해해도 됩니다. 햇볕정책 초기에 중요한 것은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이었지만 이것이 심화되면 제도화가 안될 수가 없습니다.
/정리=고주희기자 orwell@hk.co.kr
범기영기자 bum7102@hk.co.kr
사진=왕태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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