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H 릴리스포드 지음·이경식 옮김 휴먼& 북스 발행·1만8,000원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피그미 침팬지) 그리고 인간이 함께 서 있다. 이들 중 가장 가까운 종(種)은 무엇일까? 외형이나 행동거지를 보자면 다른 것끼리는 몰라도 인간과 나머지 종이 매우 다르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어 보인다. 18세기 카롤루스 린네의 생물 분류학에 따를 때도 인간과 이들은 과(科)가 다르다.
하지만 1960년대 모리스 굿맨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굿맨은 서로 다른 종들의 항체에 반응하는 영장류 종들의 면역력을 비교했다. 종끼리의 관계를 계량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다른 종들의 혈액이 서로 어떤 면역 작용을 하는지 관찰하는 것이 단서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인간과 아프리카 원숭이 사이의 거리가 인간 혹은 아프리카 원숭이와 오랑우탄 사이의 거리보다 더 가깝다는 것이다. 인간과 아프리카 원숭이가 오랑우탄보다 더 가까이 조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거리가 7이고 침팬지와 붉은털원숭이 사이의 거리가 30이라는 비교생화학 실험 결과도 있다. 인간이 털 없는 원숭이라는 것은 그래서 틀린 말이 아니다.
미국 뉴욕주립대 인류학 교수인 저자는 책에서 유전자를 이용해 인류의 탄생과 전파 과정을 추적하는 '유전자(또는 생물학적) 인류학'의 연구 성과를 매우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유전자니 인류학이니 하는 용어 때문에 책이 골치 아플 거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 신인류에 대체된 것으로 알려진 네안데르탈인의 행방, 유럽 농경문화의 확산 과정 등 하나 같이 눈길을 끌만한 주제다.
현대 인류가 생겨난 시점이라고 추정되는 15만 년 전은 고고 인류학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 시기이다. 화석 연구자들의 일부는 아프리카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발생한 뒤 전세계로 퍼져나갔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지리적으로 흩어져 있던 인류의 수많은 개체군이 이주를 통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유전자 자료에 근거한 해석에 따를 때 현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했으며 당시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도 다른 종이 살았지만 점차 아프리카를 기원으로 한 종으로 대체되었다고 설명한다. 네안데르탈인 역시 아프리카에서 퍼져 나간 신인류와 수천 년 이상 공존하다가 점차 수가 많아진 신인류의 유전자 풀(Pool)에 섞이어 희석됐다는 해석이다.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 아메리카 원주민은 남시베리아 바이칼호 알타이산 부근 지역과 동일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최초의 아메리카 원주민은 이 지역 주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바이칼호 지역 주민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지만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는 발견되는 유전자를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점을 들어 지역을 달리하는 개체군의 아메리카 이주가 적어도 두 차례 이상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또 '개체군 특수 대립형질'(PSAs)이라는 DNA 표시법을 사용한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 출신과 유럽 출신 사이에서 난 미국인의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부계쪽 유럽인 조상의 DNA 빈도가 훨씬 높게 나타난다. 유럽 남성이 아프리카 여성 노예를 성적으로 착취했던 미국의 노예 역사와 일치하는 결과다. 호모 사피엔스부터 피를 나눈 우리의 조상까지 인류 전반의 변모를 재미나게 살필 수 있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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