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분이 너무 쳐져서 흐름이 깨져"(첼로), "우리가 좀 빠르게 연주해볼 테니 따라 들어가 봐"(바이올린), "잠깐 내 파트는 그렇게 하면 맞추기 힘들어"(비올라).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주자 19명으로 구성된 화음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연습 광경은 오케스트라보다는 현악사중주단과 비슷하다.배익환(바이올린·미국 인디애나 음대 교수), 마티아스 북홀츠(비올라·독일 쾰른 음대 교수), 조영창(첼로·독일 엣센 음대 교수), 분야 미치노리(더블베이스·독일 뷔르츠부르크 음대 교수)가 각각 자기 파트를 이끌기 때문이다.
1996년 실내악단 화음(畵音)이 CJ그룹의 후원으로 배익환, 조영창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인 연주자를 영입해 재창단한 화음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국내 음악계에서 주목할 만한 오케스트라 운영 실험을 계속해 왔다.
국내에서 예를 찾기 힘들게 지휘자의 지시 대신 4명의 리더를 중심으로 한 단원들의 토론으로 음악을 짜 가는 방식을 채택했다는 것. 러시아 혁명 직후 구 소련에서도 '음악은 평등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를 운영했지만 음악적 해석과 레퍼토리 선정에 너무 많은 토론 시간이 걸려 결국 지휘자를 다시 세웠다. 물론 화음 체임버는 인원이 적어서 이런 실험이 가능한 측면도 있다. 대표인 박상연(비올라)씨는 "단원 30명 이하에서는 지휘자가 없어도 음악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독일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외국의 경우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로 유명한 미국의 오르페우스 체임버가 28명의 단원으로 운영된다. 72년 창단된 이 오케스트라도 민주주의적 토론과 공연 때마다 투표로 리더를 뽑는 방식이 화제가 됐다. 적어도 체임버 급의 오케스트라에서는 지휘자 중심의 독재체제에 가까웠던 기존 패러다임의 민주적 대안인 셈이다.
화음 체임버가 오르페우스와 다른 것은 상시 연습이 아닌 공연 일주일 전에 세계 각지에서 연주자가 모여 매일 5시간씩 연습하고, 리더가 바뀌지 않는다는 정도이다. 대표의 주된 역할도 역시 구성원 간의 조율이다. 화음 체임버의 연습에서는 한국어, 영어, 독일어로 자유롭게 의견이 오가고 자리도 서열보다는 음악적 효과를 고려해 배치한다. 이런 개방성은 40대 해외 유학파 연주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금호현악사중주단 출신의 김상진(비올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최연소로 입단해 화제를 모은 박상민(첼로) 등 쟁쟁한 유망주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이런 자유로움과는 달리 화음 체임버의 연주 컨셉은 확고하다. '그림에서 음악이 들리고, 음악에서 그림이 보인다'는 창단 취지처럼 남양주 서호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새로 작곡한 음악을 초연하는 '자화상' 시리즈를 여는 등 미술과의 만남을 부단히 추구해 왔다. 24일 오후6시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화음'(畵音) 3부작 중 두 번째인 '죽음과 상실'도 뭉크, 에곤 쉴레, 모딜리아니, 프리다 칼로 등 유명 화가의 작품과 코드가 맞는 곡들을 모아 연주한다.
야냐첵의 '현악을 위한 합주곡'은 뭉크의 '병실에서의 죽음'과 '절규', 백병동의 신곡 '부러진 기둥―프리다 칼로에 보내는 오마쥬'는 멕시코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부러진 기둥', 슈베르트의 현악합주곡 '죽음과 소녀'는 에곤 쉴레의 '포옹'과 모딜리아니의 '잔느 에뷔테른느의 초상' 식으로 짝을 이루어 연주와 함께 스크린을 통해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아나운서 정미홍의 해설도 곁들여진다.
특히 칼로의 '부러진 기둥'을 보고 만들었다는 백병동의 신작이 흥미롭다. 칼로는 7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절고, 18세 때 교통사고로 척추와 오른쪽 다리, 자궁을 다치고, 만년에는 무릎을 절단한 비운의 화가였다. 동료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와 두 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등 처절했던 삶과 사랑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부러진 기둥'은 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2만∼4만원. (02)2005―0114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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