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근본 계율인 십계명이 새겨진 기념물을 공공장소에 설치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란이 미국 사회를 달구고 있다.논쟁의 진원지는 앨라배마주. 고먼 휴스턴 판사 등 주 대법원 판사 8명은 21일 만장일치로 법원 청사 로비에 있는 십계명 석판(사진)을 가급적 빨리 철거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것은 로이 무어 대법원장에 대한 일종의 항명이다. 무어 대법원장은 지난해 11월 연방법원이 올 8월20일 자정까지 십계명을 철거할 것을 지시한 판결을 거부하겠다고 완강히 버텨 왔다.
휴스턴 판사 등의 명령에 따라 20일 자정 직후 십계명 주위에 검은색 칸막이가 설치됐지만, 무어 대법원장은 3시간 만에 떼어냈다. 이 과정에서 21명이 경찰에 연행되는 등 충돌까지 빚어졌다. 무어와 지지자 수 백 명은 "미국 법의 도덕적 기초가 되는 십계명의 수호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며 대법원 청사를 둘러싼 채 단식 시위를 하고 있다. 휴스턴 판사 등도 "상급 법원의 판결에 따르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조치도 마다하지 않겠다. 무어는 법 위에 군림하려 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어 상황은 더욱 악화할 조짐이다.
문제가 된 높이 1.2m, 무게 2,385㎏ 짜리의 십계명 석판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무어가 2001년 8월 부임 직후 야간을 틈타 몰래 설치한 것. '정교분리 미국연합' 등은 즉각 "공공장소에 십계명을 전시하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의무화하고 정부가 특정 종교를 지원하지 못하게 하는 헌법 조항에 위배된다"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내 승소했다.
그러나 무어와 '기독수호연합' 등은 "십계명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교의 신념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철거 시한 연기 소송을 냈지만 20일 기각 판결이 났다. 이들은 곧 연방 대법원에 항소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빌 프라이어 주 법무장관과 밥 라일리 주지사 등은 21일부터 주정부에 부과되는 하루 5,000달러(600만원)의 벌금 등을 이유로 철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21일 미 언론들에 따르면 현재 미 13개 주에서 십계명 전시에 대한 소송이 진행 중이며, 최근 나온 몇 개의 판결들은 철거와 존치가 지역별로 엇갈렸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사안의 민감성을 들어 수년 째 이에 대한 최종 판결을 미루고 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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