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충류와 벌레를 싫어한다. 아니, 무서워한다. 그걸 아는 장난기 많은 아들들은 "엄마, 선물!" 하면서 고무로 만든 공룡, 거미, 뱀 같은 것들을 던지고 도망가곤 했다. 내가 비명을 지르며 벌벌 떨면 애들은 "아니, 이 장난감이 그렇게 무서운가"하며 슬쩍 잘난 척했다. 나 역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좀 징그럽게 생겼다는 것 말고는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무섭다.그런데 그림책 '소피의 달빛 담요'에 나오는 소피라는 거미는 전혀 징그럽지 않다.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쓰고 길고 늘씬한 다리로 하얀 커튼을 짜고 있는 거미의 그림은 오히려 우아하다.
소피는 예술가 집거미다. 그가 짜는 거미줄은 놀라우리만큼 아름답고 모양도 다양하다. 엄마는 그런 소피를 자랑스러워 한다. 그러나 소피가 자라 처음으로 홀로 만나는 세상은 그를 반겨주지 않는다. 그가 찾아낸 하숙집은 낡고 우중충해 소피는 자기의 작품으로 아름답게 꾸미려고 한다. 비단 거미줄에 황금빛 햇살을 섞어 현관 커튼을 짜지만 소피를 본 하숙집 주인은 대걸레를 휘두른다. 소피는 위층 예인선 선장의 방으로 이사 간다. 그 방이 온통 우중충한 회색으로 뒤덮인 걸 보고 소피는 멋진 하늘색으로 새 옷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거미를 본 선장은 창문을 넘어 지붕 위로 도망가려 한다. 이제 늙어버린 소피는 길고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올라 혼자 사는 젊은 여인의 방으로 가서 여인의 뜨개질 바구니에 들어가 잠이 들어버린다. 어느 날, 젊은 여인도 소피를 발견하지만 그는 소피에게 가만히 미소 짓는다. 임신한 여인에게 아기 담요가 필요한 것을 알고 소피는 자기가 짜기로 마음먹는다. 달빛 비치는 창가에서 소피가 짜는 담요엔 달빛에 별빛이 섞이고, 솔잎 향기, 이슬, 밤의 도깨비불, 어릴 때 듣던 자장가, 눈송이도 들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가슴까지.
그날 밤 젊은 여인은 창턱에 놓인 소피의 담요를 보게 된다. 너무나 부드럽고 아름다운 담요를. 사랑과 놀라움으로 가득 찬 여인은 잠든 아기에게 그 담요를 덮어주고 한 손을 담요 위에 얹은 채 잠이 든다. 소피의 달빛 담요와 엄마 손의 따뜻함이 몇 배가 되어 아기에게 전달되리라.
서양 사회에서 혼자 사는 외로운 동양 여인과 사람들에게 환영 받지 못하는 거미의 교감을 그린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수채화로 그린 흰색, 연보라, 파란색이 섞인 듯한 다락방의 색조가 잘 어울린다. 할머니가 되어 머리가 하얗게 센 소피가 알록달록한 양말을 신고 지팡이 대신 머리핀을 짚고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는 그림은 오래도록 기억날 것 같다.
이렇게 거미의 사랑이 아름다우니 다음에는 뱀 이야기에 도전해 볼까. 어느 생물학자가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던가.
/대구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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