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카플란 지음·이순호 옮김 르네상스 발행·2만원미국 언론인 출신의 저술가이며 국제문제 전문가인 로버트 카플란(51·사진)은 국내에서도 낯선 이름은 아니다. 이미 그의 책이 몇 권 번역 소개되었고 책이 나올 때마다 적지 않게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저서 상당수는 미국 우파의 필독서니, 조지 W 부시 정부 관료들이 탐독한다느니 하는 설명이 늘 따라붙었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특유의 방랑 기질에다 국제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그는 미국 관리나 학자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중동, 동유럽, 아프리카 등을 수십 년 동안 누비고 다녔다. 그의 책에는 그 지역의 생생한 현장과 사람, 학자의 목소리가 풍부하게 녹아있다. 오죽하면 미 중앙정보국(CIA) 정보에 반신반의하던 미 정부 관리들이 카플란의 책에서 같은 분석을 접하고 그 보고를 믿게 되었다는 소리까지 있겠는가.
2000년에 출간된 이 책은 빌 클린턴 전 정부의 발칸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발칸의 유령들'(1994년)의 후속작이다. 하지만 관심 범위를 훨씬 넓혀 대표적 분쟁 지역인 중동과 석유·천연가스 등 자원을 둘러싸고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큰 중앙아시아를 두루 다뤘다. 책에는 발칸(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중동(터키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중앙아시아(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의 각국 정세와 현안이 밀도 높게 파헤쳐져 있다.
우리가 매우 세속화한 이슬람 국가나 유럽과 아시아의 교량 역할을 하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후신 정도로만 알고 있는 터키를 카플란은 '(군부의) 교묘한 독재 국가'라고 부른다. "터키의 문제는 군부가 단지 정부의 일개 부처가 아닌, 내부로부터 정부를 조종하는 강력한 로비 조직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중동 국가와 달리 터키가 이스라엘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지정학적인 전략을 십분 보여주는 것이다. "터키는 남동부 반란의 주요 원인인 쿠르드족 노동자당에 대한 아랍국의 지원을 막아야 했다. 특히 남부 하타이 지역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시리아가 못마땅하고, 이라크에 대해서도 터키는 석유 매장량이 풍부한 북부 모술 지역에 대한 권리를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상태다."
제목으로 쓴 동쪽의 타타르는 투르크메니스탄을 가리킨다.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4위의 엄청난 자원 잠재력을 가졌지만 주민 상당수가 거리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부족국가의 태를 벗지 못하는 이 나라에서 저자는 16년에 걸친 여행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썼다. "내가 가장 우려했던 점은 세계화였다. …루마니아에서 투르크메니스탄까지 오는 동안 나는 제도와 사회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마구잡이식 자본주의 물결이 탐욕적 소수 지배 계층과 가난한 노동자 계층 간의 간극을 얼마나 위험스럽게 벌려 놓았는지를 확인했다."
기초가 허술한 나라에서는 시민사회가 자유와 민주주의에 의해서라기보다 오직 힘과 마키아벨리적 책략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쓴 대목에서는 철두철미 현실정치 논리를 앞세우는 카플란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해당 지역의 역사를 두루 꿰면서 이러한 분석을 여행기에 녹여낸 카플란의 솜씨는 정세 분석의 치밀함 못지 않게 감탄할 만한 것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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