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언 지음 한겨레신문사 발행·8,000원"선생님, 고추 팔면 얼마쯤 받을 것 같으세요?"
"얼마 받을 것 같은데."
"백 원이요."
"왜?"
"선생님은 늙었으니까 고추도 늙었을 거잖아요."
"그럼, 한얼이 고추는 얼마 받을 수 있어?"
"응. 백만 원이요."
"왜?"
"저는 아직 젊잖아요."
아이구 맙소사. 선생님 거시기는 값이 얼마냐고 묻는 꼬마라니. 동화작가 겸 서울 동명초등학교 교사 송언(47) 씨가 쓴 '선생님, 쟤가 그랬어요'에 나오는 깜찍한 장면이다. 이 책은 그가 못말리는 말썽꾸러기에 개구쟁이 아니면 새침떼기, 까불이, 고자질쟁이인 초등학교 2학년 꼬마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쓴 1년 간의 학급 일기다. '저놈들 때문에 내가 못살아' 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올 만큼 선생님을 힘들게 만드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주름잡는 초등학교 2학년 교실의 풍경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보여주는데 요절복통할 요지경 속이다. 날짜별로 쓴 일기의 하루하루가 도무지 바람 잘 날이 없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아이들 말은 "선생님, 얘가 나 놀려요" "쟤가 저 때렸어요" "쟤네들 서로 좋아한대요" "거짓말이에요" 같은 것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지은이는 "나는 구름을 타고 다니는 백오십 살 먹은 도사"라고 허풍을 친다. 아이들은 도사라고 우기는 선생님에게 말 잘 들을 테니 구름 한 바퀴 태워달라고 조른다.
이 책에서 만나는 가장 큰 즐거움은 어린이들의 구김살 없는 동심이다. 여자 짝꿍이 전학 간다고 복도에서 훌쩍훌쩍 울고, '야한 것 보여주겠다'면서 분홍 브래지어를 한 인어공주 그림을 들이밀고, '선생님이 좋다'며 뽀뽀를 하고 달아나는가 하면 심지어 "깨물어먹고 싶다"고 고백을 하기도 하고, 집 앞 잔디밭에서 주웠다며 보약 봉지를 건네고, "선생님 백 원만" "선생님, 사탕 한 개만" 하고 손을 내미는 아이들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지은이는 아이들의 병원놀이에 빨간 볼펜으로 주사 놓는 도사 간호사로 끼어들기도 하고, 도사라는 증거로 허연 머리와 콧수염을 강조하면서 딱지치기 놀이를 하기도 한다.
책에는 요즘 아이들이 자주 쓰는 별난 욕도 난무한다. 이를테면 "썩은 떡이나 먹어라." "너, 외계인 빤스 찢어먹었지?" 같은 기상천외한 욕 외에 '뽀큐'(Fuck You)라는 지독한 욕까지. 그럴 때 지은이가 내린 처방은 그런 말을 한 아이에게 그 욕을 별명으로 붙여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반에는 '썩은 떡'과 '외계인 빤쓰'가 등장했다.
지은이는 "교사이기 이전에 친구가 되고 싶고, 아이들에게 낡은 것을 가르치기보다는 아이들에게서 새것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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