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잘입는 사람의 옷장속은 어떤 모습일까?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맘때면 통과의례처럼 거치는 일이 옷장 정리다. 얇은 여름옷을 집어넣고 두터운 가을 옷을 꺼내 깔끔하게 진열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옷장 정리.
그러나 패션리더들은 옷장 정리를 다르게 정의한다. '옷장의변화는 퍼스널리티의 변화'라는 그들은 '이번 시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싶은가'를 표현하는 것이 옷장 정리라고 말한다. 옷 잘입기로 소문난 패션디자이너 박지원씨가 자신의 옷장을 활짝 열고 가을맞이 옷장정리 노하우를 공개했다.
그녀의 옷장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서울 역삼동에 있는 상가건물 꼭대기층을 쓰고있는 박씨의 옷방에 들어섰을 때 기자는 풀썩 주저앉고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이게 서울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패션리더의 옷방 맞아?
'오가나이즈(organize: 정리 정돈)에 대한 센스라고는 약에 쓸려고 해도 없다'는 본인의 표현대로 3평이 채 안돼보이는 옷방은 사방벽을 ?자의 옷장과 수납선반으로 꽉 채운데다 방 한가운데는 옷이 빼곡이 걸려있는 행거까지 들어서있어 한 사람이나 겨우 들어설까 싶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아주 스스럼없이 "그래도 이게 제 머릿속에선 다 정리정돈이 돼있어요" 한다. 도대체 어떤 정리?
"반팔 옷 집어넣고 긴팔 옷 꺼내는 식의 옷장정리는 기계적인차원에서는 맞지만 옷을 왜 입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면 정답이 아니예요. 옷을 왜 입지요? 추우니까 입고 더우니까 벗나요? 아니예요. 옷을 입는다는 건 자기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강렬한 방법이예요. 그런 의미에서 옷장은 개성표현의 중심이구요. 당연히 옷장 정리는 '정돈'이 아닌 '테마' 차원에서 접근해야해요."
제 1원칙- 테마를 갖고 정리한다
입고싶은 옷들이 그득한 옷장은 즐거움의 원천이지만 그렇지않은 옷장은 두통거리일 뿐이다. 즐거움의 원천을 갖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번 가을 나는 어떻게 보이고싶은가' 자문하는 일이다.
"지난 시즌엔 저는 집시였어요. 칼라풀하고 여성스러운 레이스 옷들, 자수를 놓거나 프릴이 달린 블라우스나 원피스, 프린지가 주렁주렁 매달린 쇼올 등등. 너무 입으니까 이젠 지겹네요. 그래서 이번 가을엔 좀 더 정돈되고 엘레강스한 여성이 되기로 했지요. 카멜이나 브라운, 블랙 앤 화이트의 베이직한 라인들, 바지도 찢어진 청바지대신 디테일이 생략된 깔끔한 모직바지와 기본형 트렌치코트, 무릎길이 H라인 치마 등이 새로이 옷장을 차지했어요."
테마를 갖고 정리하다보면 자연히 버릴 옷과 안 버릴 옷이 결정된다. 버릴 옷의 선택기준은 두가지. 첫째는 지난 시즌 몇 번 입었나, 둘째는 이건 정말 시즌 아웃(season out)이다. "제 경험상 옷을 산지 한 주안에 단 한 번도 안입었다면 그 옷은 몇 년을 갖고 있어도 결국 안입어요. 옷장 공간 낭비하지말고 과감하게 정리해서 친구에게 주는 게 상책입니다."
제 2원칙- 시즌리스(seasonless) 옷장을 만들라
계절이 바뀐다고 여름옷을 몽땅 집어넣는 것은 진정한 멋쟁이의 길이 아니다. 냉온방이 잘되고 서로 다른 소재나 스타일의 옷들을 언밸런스하게 조합해 입는 믹스& 매치 연출법이 인기를 얻는 요즘엔 계절에 맞는 옷이라는 구분은 의미가 없다.
"짧아도 색감이나 촉감이 겨울옷과도 잘 어울리는 것들은 그대로 둬야해요. 제 경우엔 한 여름에도 가죽재킷이 옷장안에 버젓이 버티고 있어요. 냉방이 잘되는 레스토랑이나 사무실에서 짧은 스커트와 어울려 멋지게 입을 수 있거든요. 또 한겨울에도 민소매의 반짝이가 달린 탑이나 원피스는 자주 입어요. 겉에 두꺼운 코트를 걸치면 그만이니까요. 옷장 정리를 할 때는 계절보다는 아이템이나 스타일, 색상을 먼저 생각해야 다양한 연출을 할 수 있어요."
시즌리스 옷장은 박씨가 옷입기의 철칙으로 생각하는 '착하게 안입기(!)'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시즌리스는 파격과 일탈의 재미가 있잖아요. 규범이나 관습에 딱 맞게 입는 착한 스타일은 너무 건조하게 느껴져요."
제 3원칙- 옷장속엔 옷만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고급옷들로 옷장을 빼곡이 채웠다 해도 자신만의 독특한 멋이 없다면 그건 명품족 소리는 들어도 멋쟁이 소리를 듣기는 어렵다. 옷장에 개성을 부여하지 않는 한 그렇다.
"베이직한 아이템을 일단 옷장에 깔았으면 거기에 포인트가 될 만한 아이템들이 필요해요. 다시 말하면 옷장엔 옷과 액세서리가 함께 있어야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옷장을 열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오늘은 무얼 어떻게 입을것인가 생각할 수 있어야 비로소 아, 내가 이런 종류 혹은 이런 색상의 신발이 더 필요해 등 새로 구입해서 구색을 채워넣어야 할 물건들에 대한 컨셉도 명확해져요."
이번 가을을 위해 박씨가 구색을 맞춰 옷장에 채워넣은 액세서리는 주로 메탈릭한 느낌의 구두와 벨트 등이다. 특히 골드계열의 주얼리가 다수. 박씨의 옷장은 '의상은 우아하고 단순하며 고급스럽게, 대신 액세서리는 메탈릭하고 펑키하게'라고 말없이 웅변하고있는 셈이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옷, 현명하게 삽시다
박지원의 스마트바잉(Smart buying) 7계명
입고싶은 옷들로 가득한 잘 정리된 옷장을 가지려면 버리는 것만큼이나 사들이는 데도 정성을 들여야한다. 박지원씨는 ‘현명한 구매(smart buying)’가 좋은 옷장을 만드는 기본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제가 ‘내가 입을 옷이 없다고 그러면 사람들한테 맞아죽겠지?’ 그랬더니 친구들이 ‘몰라서 묻냐’며 한심해하데요. 패션디자이너라 정말 치여죽을 정도로 옷이 많지만 그래도 시즌이 새로 시작되면 저도 옷을 사요. 제가 만들지않는 옷 특히 데님류나 티셔츠류 등을 매번 구입하는데 그럴 때마다 스마트바잉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지요. 왜, 옷장이 미어져라 옷은 많은데 정작 입을 옷은 없다는 사람들이 많죠? 그런 분들 이 7계명을 꼭 귀담아들으셔야합니다.”
1. 세일때는 사지않는다. 오직 싸다는 이유로 입지도 않을 옷 사게된다.
2. 정확한 목적이 있으면 세일구매도 좋다. 평소 정장을 안입지만 중요한 사람의 결혼식이나 졸업식 참석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
3. 세일이나 아울렛에서는 가장 베이직한 상품만 구입한다. 폴라니트셔츠 같은.
4. 재고는 재고인 이유가 있다. 새빨간 벨벳치마 같은 아주 특수한 아이템이거나 원단과 디자인, 기능 등에 하자있는 경우가 대부분.
5. 값이 아니라 얼마나 잘, 그리고 자주 입을 것인가를 생각하라. 50만원짜리는 비싸다고 안사면서 10만원짜리 5개는 싸다면서 산다. 50만원짜리라면 정말 자주 입었을 것이지만, 10만원짜리는 한두개만 몇 번 입고 말게된다.
6. 쇼핑 스팟(shopping spot)을 찾아라. 돈지갑을 든채 별다른 생각없이 백화점을 갔다가는 내게 어울리지않는 옷을 사게될 확률이 100%다. 평소 구매가 아닌 눈요기 목적으로 이곳저곳 옷가게를 둘러보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스타일의 옷을 가져다놓는 가게를 알아두면 구매시 실패없는 선택을 할 수 있다.
7. 브랜드 쇼핑이 필요하다. 청바지 하나에도 수십가지의 브랜드가 있으며 브랜드 마다 피팅방식이 조금씩 달라 착용감에서 차이가 난다. 평소 밑위길이나 허리선의 재단 등이 내게 맞는 브랜드를 알아두어야 현명한 구매를 할 수 있다.
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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