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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모바일 보헤미안-휴대폰 문화

입력
2003.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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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커버를 열어보자. 휴대폰 제작사의 로고나 큼직한 시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면 아직 가로 세로 2인치(5㎝) 액정 안의 세상에 빠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손바닥보다 작지만 그 안에는 인터넷, 예술, 즐거움이 동시에 꿈틀댄다. 액정 속 세상은 이미 무서운 속도로 영역확장중이다. 휴대폰 액정은 이제 즐거움을 위한 공간이다. 바야흐로 '모바일 보헤미안'이 아니면, 혹은 모르면 왕따되기 십상이다.휴대폰안에 세상을 담는다

콘서트장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광경은 이제 흔하다. 한창 열광하다 번거롭게 꺼내야 하는 일반 카메라보다 한 손에 쏙 들어가는 휴대폰이 훨씬 편한 것은 당연. 필요하다면 30초도 안 걸리는 시간에 별도의 장비 없이 무선 인터넷을 통해 친구의 휴대폰이나 이메일로 사진을 바로 보낼 수도 있다. 공연이 끝나도 휴대폰에 스타의 모습을 담아두고 수업 시간이건, 전철 안에서건 시시때때로 열어볼 수 있으니 화질이 좀 떨어진다는 단점은 커버되고도 남는다.

카메라가 달려 나오기 시작하면서 휴대폰이 열려 있는 시간은 훨씬 길어졌다. 청소년 사이에서는 자신과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것이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잡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끼리 문자 주고 받는 게 유행이었어요. 그런데 새로 휴대폰을 장만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카메라가 달린 제품을 사면서 사진을 찍어 돌려보는 추세로 바뀐 거죠. 어떻게 찍으면 예쁘게 나올까 서로 연구도 해보구요." 부산 C고등학교에 다니는 성보경(18)양의 얘기다.

휴대폰에 저장할 수 있는 사진은 50∼100장. 무엇을 찍어야 할 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팔을 뻗어 스스로를 찍는 '셀프'와 친구의 공부하는 모습, 새로 개발한 '엽기적인' 표정, 귀가길 버스 정류장 등 휴대폰 카메라가 아니면 그다지 찍힐 기회가 없는 소소한 일상을 많을 때는 하루에 30여장씩 액정에 담는다.

최근 성양은 SK텔레콤에서 개최하는 '트루맨쇼'에 사진 수십장을 올렸다. 한 사람의 일상이 타인에게 쏠쏠한 구경거리가 된다는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쇼'에서 이름을 따온 이 행사는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무선인터넷으로 응모해 공개하는 행사. '24시간을 공개한다'는 의미에서 한시간에 한 장씩, 하루에 24장의 사진을 올리는 '트루맨쇼'는 휴대폰을 이용한 무선 인터넷만을 통해 진행된다.

"사람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고 하잖아요. 전혀 모르는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나 휴대폰만 열면 구경할 수 있으니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제 사진을 올리면서 남들에게 제 일상을 보여주는 것도 신나는 일이죠."

삶의 조각 1분을 동영상에 담아라

영상을 화면에 담는 일이 극소수의 전문가들에게만 허용되던 시절은 갔다. 카메라가 달린 휴대폰이라면 대부분 동영상 촬영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 '근육소년단' 단장 김남훈씨는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웹에 올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근육소년단'은 SK텔레콤의 모바일 멀티미디어 서비스 '준(June)' 사이트(www.june4u.com)에 있는 휴대폰 동영상 커뮤니티. 휴대폰으로 촬영할 수 있는 30초∼1분 정도의 시간에 삶의 조각을 담아 서로 공유하는 동호회다.

"'근육소년단'에 올라온 영상의 가장 큰 특징은 절대 편집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흘러가는 생활의 일부를 포착해 아무런 조작 없이 그대로 공개하는 거죠. 올려진 동영상은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로그인조차 필요 없어요."

'벨소리 말고 뭘 알아?'라는 휴대폰 관련 책의 저자이자 프로레슬러이기도 한 김씨가 지금까지 올린 동영상은 10여개. 친한 후배를 만난 일, 6,000원짜리 푸짐한 밥상, 여동생이 해준 얼굴 마사지 등 소재는 가지각색. 직접 찍은 것도 있고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찍은 것도 있다.

"비디오 카메라에 비해 휴대폰이 갖는 장점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손쉽게 찍을 수 있고 간단히 웹에 올릴 수 있다는 겁니다. 자기표현 욕구가 강한 요즘 젊은이들은 남이 제공해주는 컨텐츠를 관람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요."

그렇다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타인의 삶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김씨는 "같은 시대를 사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인식할 수 있어서"라고 말한다.

주머니 속의 갤러리, 모바일 아트

예술가들은 새로운 매체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손에, 가방에, 뒷주머니에 '발광(發光)'하기 위해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휴대폰 액정 역시 예외는 아니다. 휴대폰 액정을 이용한, 혹은 이를 위한 비주얼 아트는 현재 '모바일(mobile) 아트' 혹은 '와이어리스(wireless) 아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휴대폰 액정이 지금처럼 화려해지기 전인 2001년부터 '모바일아트'에 관심을 갖고 작업하고 있는 미술가 김준씨는 9월에 '나비갤러리(www.nabi.or.kr)'에서 있을 모바일 아트 전시회를 위해 한창 작업중이다.

"새로운 매체가 생겨나면 새로운 예술의 형태가 생기게되죠. 휴대폰 액정은 예술가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의 장입니다. 휴대폰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갤러리의 단점을 한 번에 커버할 수 있는 새로운 전시장입니다. 기존의 갤러리가 여러 의미에서 어려운 미술이 있는 무거운 공간이라면 휴대폰은 소비자와 예술가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가벼운 공간입니다."

모바일 아트의 특징은 짧은 시간 안에 작은 화면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 극장 같이 큰 화면이 이미지나 느낌 중심이라면 작은 화면은 이와 반대로 내러티브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 김준씨의 생각이다. 소설도 있지만 시도 있는 것처럼 작은 화면과 짧은 시간은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위한 기회라는 것이다.

"휴대폰 액정이 예술가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휴대폰 액정을 접하고 그 느낌을 정확히 흡수하고 있는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라서 활동할 때가 되면 어떤 예술보다 훌륭한, 상상을 초월한 멋진 작품이 이 작은 액정 안에 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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