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1789년 프랑스 혁명때 빵을 달라고 외치는 군중에게 루이16세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던졌다는 한마디. 하지만 케이크는 프랑스 혁명 전에 일반인들이 구경조차 쉽게 못했던 황실 음식이다.
지금 우리가 케이크를 맛보기 위해 혁명(?)전선에 나설 필요는 없다. 케이크 하우스에 앉아 무스 케이크를 한 입 먹고는 곧바로 뉴욕치즈 케이크 몇 조각을 싸가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어릴 적 등하굣길에서 침을 흘리며 바라보던 제과점 윈도 안의 하얀 버터크림 케이크. 생일 때나 가끔 맛보고 웨딩마치 때나 잘라보던 케이크는 이제 아련한 추억일 뿐이다.
케이크가 지금 우리생활의 일부로 자리잡고 최신 유행을 리드하는 패션이 됐다. 케이크가 만들어 내는 우리네 식탁과 문화, 그 트렌드를 얘기해보자.
지금 케이크는 일-불 전쟁 중
감미로운 샹송의 선율처럼 감미로운 맛이 일품인 프랑스식 무스 케이크는 최근 생크림 케이크가 차지했던 자리를 이어받았다. 생크림이 공기에 노출되면 금세 딱딱하게 굳어지던 버터크림 케이크를 밀어냈듯. 케이크 본고장의 명예를 살린 셈이다.
프랑스어로 '거품' 이라는 뜻을 가진 무스는 부드럽고 차가운 크림 상태의 과자를 가리킨다. 계란의 흰자를 이용해 거품을 낸 생크림에 과일 퓨레나 초콜릿 등을 혼합, 차갑게 굳힌 크림 케이크다. 맛은 아이스크림과 젤리의 중간 형태라고나 할까. 우유 생크림에 망고 퓨레를 섞어 거품을 낸 망고 무스 케이크나 초콜릿 무스케이크 등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정통 유럽식 케이크로는 부족해서일까. 일본식 케이크의 인기도 예사롭지 않다. 일본식 케이크 하우스로 일컬어지는 '라리'나 '아루'를 비롯, 일본인이 직접 만드는 케이크 하우스 '에구찌'를 찾는 발길은 날로 늘어나기만 한다.
일찌감치 유럽 케이크 문화를 받아들여 고유한 시장을 형성한 일본식케이크는 아기자기한 모양에 케이크 깊숙한 곳까지 이어지는 '치밀한' 맛을 자랑한다. 속의 빵이 두툼하고 거칠며 투박한 이미지의 유럽식과는 확실히 차이 난다. 아루의 안정훈 부장은 "케이크 위에 신선한 재료가 많이 올라 가고 당도를 줄인 맛도 일본식 케이크로 분류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서로 대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장점은 적극 살려 맛만 좋으만 그만이지, 국가가 무슨 문제일까. 그래서 에구찌나 아루에서는 일본식 무스케이크가 인기품목이다. 무스가 주재료이지만 모양과 맛에서는 섬세함이 배어난다.
빵집은 싫다. 케이크 전문점으로
케이크를 사려면 베이커리로 가면 된다고?. 아니다. 이제는 '파티저리(Patisserie)로 가야 한다. 불어로 과자점을 의미하는 파티저리는 케이크 전문점. 빵을 전문으로 팔면서 케이크도 파는 곳이 아니라 케이크를 메인으로 파는 곳이다.
서울 청담동의 에구찌는 간판에 '파티저리'라고 그대로 써 있다. 다소 생소하게 들려도 케이크에 대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용어다. 이 곳은 집에 갈 때 잠깐 들러 싸갖고 가거나 잠시 차 한잔과 함께 케이크를 맛 보는 케이크 전문점이다.
식사 후 차 한잔을 하러 카페를 갈까, 아니면 커피숍을 갈까? 둘 다 아니다. 케이크를 먹으러 가는 사람들도 많다. 라리나 투썸플레이스, 가루, 미고 등이 목적지다. 바로 케이크 하우스라고 부르는 곳들이다.
서울 청담동의 '카페 라리'. 입구에 카페라고 쓰여져 있는데도 사람들은 이 곳에 와서 케이크를 주문한다. 외관상 케이크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거나 케이크 하우스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알고들 온다. 그만큼 케이크 마니아들이 많다는 증거다.
이 곳에 케이크 하우스로 자리 잡은지 무려 13년이나 됐다. 김규철 이사는 "당시만 해도 케이크를 전문으로 판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식사후 이 곳에 들러 케이크를 먹으면서 차 한잔을 마시는 것은 하나의 코스가 됐다.
아루나 투썸플레이스 역시 케이크만을 맛보려는 젊은이들이 밀려드는 케이크 1번지. 모두 케이크전문점과 카페의 컨셉이 합쳐진 '케이크 하우스'의 모습이다.
케이크 문화 1번지, 청담ㆍ압구정
젊음과 유행1번지 청담동과 압구정동은 케이크 문화의 선구자라는 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9년 청담동에 처음 문을 연 에구찌. 당시만 해도 '청담동에 웬 케이크점'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은 이 동네의 유명 대표 숍 중 하나가 됐다. 지금은 아루 미고 라리 가루 등 웬만한 유명 케이크 전문점은 모두 압구정 거리에 본점 혹은 지점이 몰려 있다. 최근 들어서는 서울 이대앞과 신촌도 케이크 문화의 주도 지대. 이대 앞의 마고와 페라, 신촌의 투썸플레이스 등이 대표 장소다.
케이크는 단골집에서만…
그냥 지나가는 길에, 집 근처에서 케이크를 사간다면? 그건 성의없는 일이기 십상이다. 케이크 마니아들은 단골집에서만 케이크를 산다. 청담동의 케이크 하우스에 들르는 이들은 모두 일부러 찾아 오는 이들이다. 아루의 김원석 사장은 "집이 근처도 아니고 대중교통도 불편하지만 케이크 맛을 알기에 단골집을 찾아온다.
적어도 한 가지 케이크 맛에 익숙하거나 길들여져서라고 할 수 있다"고 풀이한다. 에구찌의 안주인 송문숙씨도 "영화에서 주연 배우가 단골 케이크숍에 들러 자주 먹던 케이크를 사가는 모습을 이제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다"고 덧붙인다.
케이크 전문점 소개
카페 라리
1991년 청담동에 문을 연 '카페 라리'는 케이크에 차를 얹어 파는 케이크 하우스의 원조로 꼽힌다. 시폰케이크 생크림케이크 고구마케이크 치즈케이크 크렙호박케이크 등 그동안 유행했던 인기 케이크들을 개발했고 맛에도 일가견이 있다.
요즘은 단 맛과 버터 함유량을 줄인 다이어트용 케이크를 만드는데 힘을 쏟고 있다. 크림치즈케이크와 딸기케이크는 대표적 자랑거리. 주말이나 낮에는 가족단위, 밤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할아버지와 손자손녀까지 3대가 같이 찾아도 어색하지 않다. 거의 단골손님들. 직원들이 서빙 종류에 따라 인사 각도가 다를 만큼 서비스가 철저한 것도 눈길을 끈다. (02)518_9627
아루
다양한 일본식 무스케이크들이 맛깔스럽다. 케이크의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곳. 크고 화려하기보다 조그마하고 아기자기해 마치 팬시제품같다. 케이크를 디자인한다는 것이 이 곳의 모토.
유럽산 치즈를 사용한 레어치즈 케이크와 티라미슈가 인기 품목. 너트류인 피스타치오를 사용한 피스타치오쇼콜라는 이 곳에만 있는 '특종 메뉴'. 연두색 빛깔이 예쁘장하면서도 먹음직스럽다. 인테리어와 케이크의 맛, 모양까지 젊은 분위기여서 20~30대 여성들이 좋아한다. 삼청동과 명동 직영점을 비롯, 7개 매장을 갖고 있다. (02)318_5577
에구찌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일본식 무스케이크를 주로 선보인다. 모두 일본인 에구찌씨가 직접 만든다. 케이크 마다 안의 빵(스폰지라고 부른다) 종류가 각각 다르다. 무스나 생크림 등의 재료와 빵의 맛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고집에서다.
구워서 만드는 오리지널 하드 타입의 뉴욕치즈 케이크가 간판 케이크. 밀가루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으며 치즈 함유율이 60%나 돼 씹는 맛이 일품이다. 뉴욕치즈케이크를 워낙 잘 만들어 업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제과 시범과 세미나도 연다. (02)3442_1258
가루
도산공원 골목에 문을 연 작은 베이커리. 케이크의 명품을 지향한다. 간판 아래 '케이크 부띠끄'라는 부제가 적혀 있는 만큼 놀랄 만큼 눈길을 끄는 케이크를 많이 내놓는다. 자동차, 크리스마스트리, 피라미드, 돔 형의 모양에서 보듯 흔히 볼 수 있는 케이크와는 다른 독특한 스타일의 케이크를 많이 만든다.
다른 집에서 찾기 어려운 케이크를 찾는 이들이 많이 온다. 가격은 웬만한 케이크 하우스에서 한조각에 3,500~4,500원인데 반해 이 곳에서는 5,000~7,000원이다. (02)3444_0768
이승남의 꽃과빵
케이크에 화려한 꽃잎 장식이 추가된다면…. 플로리스트 출신의 이승남씨는 케이크와 꽃을 조화시킨 '꽃케이크'를 만들어 낸다. 케이크에 들어가는 꽃은 모두 식용 꽃. 장미와 차이브스, 국화 바이올렛이 많이 사용된다. 케이크의 모양과 맛, 그리고 꽃의 향기가 어우러져 시각과 미각, 그리고 후각까지 만족시킨다.
웨딩이나 생일 파티용으로 주문 생산한다. 꽃케이크를 선물받는 이들은 화려하고 예쁜 모양에 감동받는다고. 5주 과정의 꽃 케이크 만들기 강습에 참여해 케이크 만드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02)516_3971
투썸플레이스
신촌에 위치한 정통 유럽풍 카페로 다양한 케이크와 함께 샌드위치, 아이스크림, 과일샐러드 등의 메뉴가 준비돼 있다. 벨기에에서 직접 가져온 벽돌로 실내벽을 만들고 벤자민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독특한 실내분위기도 특징. 30여가지의 유럽풍 정통 케이크를 내놓고 있다.
매일 케이크 마스터가 망고 치즈케이크, 그린티 무스케이크 , 다즐링 무스케이크 등 다양한 유럽풍 무스케이크와 치즈케이크 등을 만들어 낸다. (02)3142-5995
페라
이대앞의 케이크 하우스. 미고 바로 앞에 위치, 미고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대생들이 좋아할 만한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케이크를 다양하게 선보인다. 특히 저지방 치즈 케이크가 자랑거리.
주인이면서 바리스타인 김완태씨가 직접 뽑아내는 신선한 커피를 제공해 커피 마니아들도 많이 찾는다. 미고는 실내 공간이 넓고 셀프 서비스인데 반해 이 곳은 아담하면서도 품격있는 레스토랑 서비스를 제공한다. (02)313_6085
구떼
프랑스 꼬르동 블루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조정희씨가 오픈한 케이크 슈튜디오. 독특한 스타일과 충실한 맛으로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케이크 하우스다. 주로 프랑스식 무스케이크를 선보이는데 원하는 모양의 케이크를 주문생산도 해준다. 대부분 입소문을 듣고 찾아 오는 손님들이 특별한 케이크를 주문한다. 케이크 만들기 교실도 열고 있다. (02)545_6659
케익하우스 윈
분당에 위치한 국내 케이크 하우스의 선두 주자. 김혜덕 사장은 일본식 케이크를 대중화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일본식 케이크에 일가견이 있다. 시폰케이크, 고구마케이크 등을 비롯, 빵 종류도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 (031)715_1585
미고
이대 앞에서 오랜 세월동안 사랑받아온 케이크 하우스. 케이크를 비롯,전반적인 이미지가 깔끔하다. 샐러드, 샌드위치, 치즈, 와인 등도 같이 판매하는 카페베이커리 형태.
피스타치오 망고와 치즈케이크 무스케이크가 잘 나간다. 조각 케이크가 2,500~3,400원으로 비교적 싼 편이어서 여대생들과 20대 초반이 많이 찾는다. 계속 업데이트 되는 다양한 케이크들이 자랑거리. 각기 다른 피스로 하나를 구성한 케이크도 선보인다. (02)922_6905
나폴레옹
청담동에 케이크 하우스들이 생기기 오래 전 삼선교에 문을 연 강북 케이크 하우스의 절대 강자. 오랜 세월 맛과 수준을 인정받아 온 곳으로 기본이 충실한 프랑스 케이크들을 만날 수 있다.
케이크를 만드는 이성민 차장은 국내 제과업계의 빅3에 꼽힐 만한 전문가. 유럽에 유학, 여러 곳을 돌며 10여년 동안 근무한 경력의 그는 당시 배운 기술로 유럽식 케이크들을 선보이고 있다. 지금도 1년에 한번씩 전에 일했던 곳을 찾아가 비법을 배워 온다고. (02)3445_5566
베아따
파이낸스 센터안에 있는 케이크 하우스. 빌딩내에 외국기업들이 많아 외국인의 입맛에도 맞는 케이크들을 내놓는다. 별로 달지 않아 내ㆍ외국인들에게 고루 인기. 미8군과 특급호텔에서 일했던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크림치즈케이크가 특히 자랑거리. 종류만 6가지가 된다. 고구마케이크에는 고구마 함량이 높고 초콜릿 케이크는 자극적인 맛을 피하려 초콜릿 함량을 줄였다. (02)3783_0088~9
김영모 과자점
국내 제과제빵업계의 장인 김영모씨가 운영한다. 대림아크로빌과 삼성 타워팰리스 사이에 자리잡은 과자점. 수준높기로 유명한 대치동 입맛을 붙잡을 정도의 맛과 매력이 돋보인다.
다양한 케이크와 함께 맛있는 빵을 내놓는데 유산균 발효빵이 대표 품목. 화학첨가제를 넣지 않고 유산균을 밀가루에 접종, 18~24시간 천연발효시켜 빵을 먹은 후 더부룩함이 없는 것이 장점이다. (02)3460_2005
/사진 월간지 '네이버' 제공.
/박원식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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