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8월21일 프랑스 수학자 오귀스탱 루이 코시가 파리에서 태어났다. 1857년 몰(沒). 코시가 태어난 1789년은 프랑스 대혁명이 터진 해다. 그 해부터 1871년의 파리 코뮌까지 프랑스는 당대의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역사를 창조해냈다. 혁명의 밀물이 들이치는가 하면 어느새 반혁명의 썰물이 빠져나갔고, 그 반혁명의 썰물에 적응할 만하면 다시 혁명의 해일이 몰아쳤다. 프랑스사의 흔한 이미지인 '혁명과 반동'은 주로 대혁명의 해부터 파리 코뮌의 해에 이르는 연표에 신세지고 있다.그런데 이 격동의 시대는 프랑스에서 수학자들의 연대이기도 했다. 라그랑주, 라플라스, 몽주, 푸리에, 퐁슬레, 코시, 갈루아, 에르미트 등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들 다수가 우연히도 프랑스인들이었다. 호사가라면 여기서 혁명과 수학의 '함수 관계'에 대해 따져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만도 하다. 이 수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혁명 때문에 신세를 망쳤고, 다른 일부는 혁명 덕분에 크게 출세했다. 코시는 혁명으로 괴로움을 받은 쪽에 속한다.
코시의 아버지는 구사일생으로 단두대를 피한 구체제의 경찰 간부였는데, 코시는 아버지로부터 거의 광신적이라 할 만한 가톨릭 신앙과 부르봉 왕가에 대한 충성심을 물려받았다. 1815년부터 1830년까지의 왕정복고기가 코시에게는 가장 마음 편한 시절이었으리라. 1830년 7월 혁명으로 샤를10세가 쫓겨나고 루이 필립이 즉위하자, 코시는 이 '시민의 왕'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해 소르본대학에서 쫓겨났다. 뒷날 나폴레옹3세는 코시에게 충성 서약을 면제해주고 그를 복직시켰는데, 그것은 이 오만한 독재자의 '치적'에 속한다고 할 만하다. 오늘날의 수학도들이 배우는 미적분학은 뉴턴이나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이 아니라 코시의 미적분학이기 때문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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