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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더치페이로 명랑 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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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더치페이로 명랑 사회를!

입력
2003.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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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자리에서 제 몫의 식대를 각자 내는 것을 흔히 더치페이라고 한다. 각추렴이라는 우리말이 있지만, 한국인들에게도 더치페이라는 이국적 표현이 훨씬 더 익숙하다. 더치(Dutch)는 영어로 '네덜란드의'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고 페이(Pay)는 '지불'이라는 뜻이라는데, 영어 사전에 더치페이라는 표현이 곧이곧대로 올라 있지는 않다. '제각기 셈을 치르다'라는 뜻의 동사구로 to go Dutch라는 표현이 올라 있고, '더치페이'에 해당하는 명사구로는 Dutch treat라는 표현이 올라 있다.각추렴에 '네덜란드식'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을 보면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영국인들도 그 시절에는 이런 관습을 낯설게 여겼던 듯하다. 어쩌면 이 표현에는 '술김에 부리는 허세'를 뜻하는 Dutch courage나 '냉혹한 비판자'를 가리키는 Dutch uncle이라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17∼18세기에 제해권을 두고 네덜란드와 다투었던 영국인들의 심통 맞은 경쟁 심리가 반영된 경멸적 뜻빛깔이 담겨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영어권 세계를 포함한 많은 사회에서 더치페이는 범상한 일이 되었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을 처음 방문한 한국인들은 각추렴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그 사회의 습속에 놀란다.

한국인들 다수의 몸과 마음은 아직 더치페이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듯하다. 식대를 제각기 내는 것은 왠지 박정하게 느껴지고, '단합 대회'의 단합을 해치는 것 같다. 친구들끼리의 밥자리든 사업상의 술자리든, 한국인들은 대개 한 사람이 테이블 전체를 통째로 계산한다. 그런 통짜 계산의 '짐스러운 영광'은 흔히 연장자나 상급자 또는 '어떤 필요에 의해서' 그 자리를 마련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체면 때문이든 잇속 때문이든 자비심 때문이든, 카운터에 먼저 닿으려고 애쓰는 것은 유난히 한국적인 미덕이다.

그러나 이 한국적 미덕은 사실 많은 사람에게 굴레다. 통짜 계산의 영광을 누려야 할 처지에 놓인 사람은 자리가 너무 커지게 되면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운 좋게 그 영광에서 면제된 사람들도 왠지 빌어먹는 것 같아 떳떳치 못하다. 먹고 마신 것을 10엔 단위까지도 꼼꼼히 따져 각추렴한다는 일본 사람들을 본받을 것까지야 없겠지만, 계산서의 전체 액수를 참석자 수로 나누어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얼추 계산하는 '느슨한 더치페이'는 열심히 실천해 볼 만하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도 있지만, 거의 매일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빚을 지우는 이 한국적 미덕은 이제 몰아낼 때도 되었다.

지난해 민주당 국민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뽑힌 이의 인기가 얼마 뒤 급락하자, 그 당의 한 고위 인사가 '후보에게서 설렁탕 한 그릇 얻어먹어 보지 못했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다. 그 즈음 한 논평가가 그런 '거지 근성'을 비판하며 '설렁탕은 자기 돈 내고 먹자'고 일갈하기도 했지만, 이젠 정말 밥 굶을 처지에 놓인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 밥값은 자기가 내고 먹는 게 좋겠다. 통짜 계산의 문화가 우리 사회의 부패와 꼭 깊은 관련이 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일상적 접대의 습속이 부패와 전혀 무관하다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최근 스캔들도 우리 사회의 접대 문화와 조금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 접대 문화의 한 사회심리적 측면은 결국 우리 사회의 '완장족(腕章族)들'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 '거지 근성'이다. 요즘은 달라졌으리라 믿지만, 기자들의 '거지 근성'도 유구하다. 더치페이가 정말 네덜란드에서 유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히딩크 감독 덕분에 네덜란드 붐도 일었던 판이니 내친 김에 그것 하나 정식으로 수입해 오자. 그래서 자기 밥값, 술값은 각자가 내 명랑 사회 이룩하자.

고 종 석 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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