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에는 군대 내의 의문사 발생과 욕설, 구타, 성추행 등 상급자에 의해 자행된 반 인권적 병영생활의 모습이 자주 보도돼 국민을 우려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사회가 점차 민주화되고 열린 정보화사회로 진입하다 보니 이제서야 공개적으로 노출되어 국민적 관심을 끌기 시작했을 뿐이다.성숙해 가는 우리 사회 전반과 비교할 때 부끄럽고 걱정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파행적 군대문화가 배태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요인이 있다. 식민군대의 구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군대란 본래 그런 것'이라는 생각에 젖은 일본군대 출신들과 그 아류인 독재옹호 세력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 군을 장악,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위력에 눌려 생명경시, 사병인격무시, 간부특권의식 등 반 인권적인 극단적 권위주의 문화를 '군대는 원래 그런가 보다'라는 체념상태로 받아들여 세뇌되어 왔기 때문에 생긴 병폐이다.
문민정부 이후 군은 이런 잘못된 병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왔다. 특히 최근 육군은 참모총장이 앞장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취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애쓰고 있지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그런 특단의 조치들은 일정기간 문제를 잠잠하게 할 수는 있어도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노력이 오히려 군에 더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으니, 별 수 없이 늘 하던 대로 강조의 강도만 높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사회화의 첫 과정을 대부분 군대 생활에서 경험한다. 이 첫 시작에서 형성된 조직생활에 대한 느낌과 의식은 일평생 영향을 미친다. 지금과 같은 우리의 군대문화 속에서는 바람직한 의식형성이 어렵다는 사실은 참으로 중대한 국가적 손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는 군 지휘관들의 열의에만 맡겨 분발을 촉구해서 될 일이 아니다. 온 국민적 관심과 지혜를 모아야 할 사안이다.
이를 위해 먼저 가칭 '의무병 인권신장' 법 제정을 제안한다. 이를 모법으로 하여 일본군대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뿌리 박힌 권위주의적·비민주적 군대문화를 청산해야 한다. 군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간부들은 '군인사법'에 의해서 그 권익이 확고히 보장되어있다. 그러나 사병들에게는 힘든 요구만 있을 뿐, 그들의 인권 보장을 배려한 제도적 장치는 없었다. 이 법을 통해 인간 존엄의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합되는 민주적인 군대문화를 구축하는 획기적인 여러 조치를 취함으로써 신바람 나는 병영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법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군 법무 및 검찰 구조를 기무사 조직과 유사한 독립 지원 참모체제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간부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대 전환이다. 군대의 모습은 그 시대 간부들의 철학과 신념, 그리고 의식의 투영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우리 군대문화의 문제점은 바로 간부들의 가치관과 의식 수준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인간존엄의 민주적 가치관을 내면화하여 그들의 삶 속에, 그리고 리더십에 인간에 대한 애정이 베어 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그들의 가슴속에 민족의식이 넘쳐 민족적 자존심과 자신감을 가지고서 부하들을 내 민족의 일원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자존심 없는 조직은 정신적으로 죽어있는 집단이다. 자존심 없는 간부가 자존심 없는 부하들을 양산하여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조직문화를 만든다. 이런 면에서 우리 간부들의 훈육은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간부양성과정의 모범인 사관학교의 생도훈육부터 근본적으로 검토·개혁해야 한다. 우리 장병들은 너무나 선하고 능력 있다. 이 두 가지만 개혁발전 시켜도 우리는 진정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세계최강의 군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표 명 렬 전 육군 정훈감·군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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