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하루에 두 번씩 드라마를 쓴다. 특히 서해가 그렇다. 물이 빠지는 모습이다. 빠지면서 동시에 밑의 것이 드러난다. 같은 바다면서 전혀 다른 두 개의 모습으로 변한다.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드라마다. 전북 부안군 격포 바닷가에 섰다. 물이 빠질 때마다 서해에서 가장 장엄한 드라마를 쓰는 곳이다. 드러나는 것은 흙이 아니라 거대한 바위 덩어리이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채석강은 잘 알려진 여행지이다. 많은 피서객이 다녀간다. 하지만 여름의 끝무렵에 채석강을 찾은 이유가 있다. 떠나가는 여름을 보기 위해서, 식어가는 태양을 보기 위해서이다.운이 좋았다. 오후 6시부터 물이 빠지기 시작한단다. 일몰 예정 시각은 오후 7시30분. 가장 적당한 시간이다. 게다가 정말 오랜만에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비가 씻어낸 공기도 청량하다. 오후 5시가 되니 채석강 옆 격포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던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하나 둘 씩 수건을 챙기고 일어난다. 해변이 금세 썰렁해진다.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채석강으로 진입하는 바윗길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느 틈에 옷을 갈아입은 사람들이 길의 입구에 모였다. 왜 물놀이를 마치고 옷을 갈아 입었는지 이해가 간다. 길이 넓어지면서 하나 둘 씩 돌길을 걷기 시작한다.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은 마치 순례자들의 행렬 같다.
채석강은 바위 절벽이다. 중국의 이태백이 강 위의 달그림자를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게 생겨서 이름을 그대로 빌려왔다. 단순한 절벽이 아니다. 수만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파도가 들이치면서 깎아놓은 단애이다.
바다를 향하고 있는 절벽은 육지에서는 제대로 볼 수 없다. 대신 물이 빠지면 절벽을 빙 둘러 바윗길이 드러난다. 사람들은 그 길 위에서 절벽을 올려다 본다. 아무 말이 필요없다. 감탄만 하면 된다. 한 때 이 절벽의 바위를 떼내 격포항의 방파제를 만들기도 했단다. 절벽 끝에서 끝까지의 거리는 약 500m. 물이 덜 말라 미끄러운 바위를 조심조심 걷다보면 30분이 넘게 걸린다.
7시가 가까워지면서 순례자처럼 절벽을 돌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물이 제법 빠진 바윗길은 이제 길이 아니라 광장이다. 바다를 향해 약간 기울어져 있어 바다를 바라보면서 앉아 있기에 좋다.
바로 앞에 한 가족이 앉는다. 제법 꾸며 입은 매무새가 멀리 떠나는 차림이다. 휴가의 마지막 날인 것 같다. 어른들은 조용히 앉아 있는데 아이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물가에 뛰어가 찰랑대는 파도에 발을 적시며 논다. 부모는 새로 입혀놓은 옷이 젖을까 봐 걱정하면서도 굳이 말리지 않는다.
하늘의 색깔이 어느덧 달라졌다. 일몰이 시작된다. 눈이 부셔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던 태양은 노랗게 윤곽을 찾았다. 그리고 수평선을 향해 눕는다. 바다와 가까워지면서 태양은 모습과 색을 바꾼다. 옆으로 몸을 부풀린다. 찌부러져 보인다. 색깔은 완전한 붉은 색이다. 태초의 붉은 색이다. 그 붉은 빛이 물에 닿으면서 바다도 붉게 끓는다. 바다의 기운을 받아서 하늘도 빨갛게 탄다. 여름의 마지막 불꽃이다. 놀던 아이들도 완전히 넋이 나갔다.
태양이 수평선에 먹히면서 바람이 달라진다. 선선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하다. 여름을 보내는 바람이다. 해의 밑부분이 함몰하면서부터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한일자(一)로 수평선에 마지막까지 어른대던 빛도 결국 없어졌다. 강렬한 일몰 뒤여서일까. 바로 어두움이다. 여름은 그렇게 까만 색으로 식었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여름을 날려보낸다.
"이제 끝∼! 집에 가자!"
/부안=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 부안 여행법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한 부안은 이제 서해안의 가장 유명한 여행지가 됐다. '춘변산 추내장'이란 옛말이 있을 만큼 옛날부터 여행지로 알려져 왔지만 요즘의 기세는 정말 대단하다.
변산반도를 빙 두르는 해안선이 우선 아름답고 바다를 호위하고 있는 변산의 골짜기마다 아름답고 유서깊은 명소가 많다. 채석강 다음으로 들러야 하는 곳이 내소사.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지어졌다. 숲과 절집으로 유명하다.
절에 이르는 전나무숲길은 국내에서 가장 분위기 좋은 길로 꼽힌다. 절 마당의 노거수들이 넉넉하고 단청을 입히지 않은 고즈넉한 절집이 아름답다. 내소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지나치는 곳이 지장암이다. 전나무숲길 옆으로 샛길이 나 있고 100m만 들어가면 지장암을 볼 수 있다. 거친 바위 절벽 아래 새가 둥지를 틀듯이 놓여있다.
계화도에 들르면 독특한 풍광과 만난다. 원래 섬이었지만 간척사업으로 연결돼 이제는 육지다. 정말 바다 같은 논이 있다. 논 사이로 드문드문 가로수가 길게 선을 긋는다. 이국적인 풍광이다.
곰소염전 일대는 이제 번화가가 됐다. 풍부한 해산물과 천일염을 이용해 옛날부터 젓갈을 만들었는데 관광객이 폭주하면서 늦은 밤까지도 불이 꺼지지 않는 젓갈시장이 됐다.
부안의 먹거리는 풍성하다. 싱싱한 생선회는 기본. 요즘 먹을만한 것은 꽃게장이다. 꽃게를 통째로 간장에 재었다가 뜯어서 먹는다. 알이 꽉 찼다. 유명한 밥도둑이다. 부안군의 모든 식당이 꽃게장 식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메뉴는 백합죽. 새만금 방조제가 완성돼 백합이 갯벌에서 사라지면 제 맛을 찾기 힘들어질 음식이다. 백합살을 썰어 쌀과 함께 끓인 고급 음식이다. 역시 대부분의 식당에서 죽을 끓인다.
가는 길도 과거에 비해 쉽고 가까워졌다. 서해안고속도로 부안IC에서 빠지면 부안읍이 지척이다. 부안읍에서 30번 국도를 탄다. 변산반도를 휘감는 일주도로이다. 거의 대부분의 명소가 이 길가에 있다. 숙박걱정은 필요없다. 장급여관도 많을 뿐 아니라 변산반도의 대부분 민가에서 민박을 친다. 부안군청 문화관광과 (063)580-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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