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학술대회이지 실제로는 정치·사회 행사 성격이 짙었던 남북 공동 학술회의가 서서히 내실을 갖춰가고 있다. 남북 학자들이 정례로 만나고, 공동 연구를 추진하기 위한 준비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체계적 학술 교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남북 왕래가 수월해진 데 힘입어 회의 단골 개최지도 중국 옌볜(延邊)이나 선양(瀋陽)에서 평양으로 옮겨지고 있다.강만길 상지대 총장 등 남한 역사학자 10여 명은 20일 평양에서 조선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등과 공동으로 '국호 영문 표기 문제 남북 학술 토론회'를 연다. 남한에서는 정용욱 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외교 문서를 통해 본 Korea와 Corea의 차이'를, 이상태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사가 '고지도에 나타난 국호 표기의 변천'을 발표한다. 북한에서는 역사연구소 연구사 등이 '일제 이전 시기까지의 국호 영문 표기 자료' '구한말과 일제시기 국가 공문서 국호 영문 표기 고증' 등 관련 연구 성과를 제시할 예정이다. 이 남북학술토론회는 시사 월간지 '민족 21' 주관으로 벌써 4회째를 맞아 정례화 궤도에 올라섰다.
중요한 것은 학술대회 이후 남북 역사학자 교류를 활성화하고 공동 연구를 추진하기 위한 '남북 역사학자 협의회 준비위원회'가 발족된다는 점이다. 광복 이후 남북 학자 교류를 위한 상설 조직이 만들어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남북 학자들은 준비위 발족과 향후 활동이 다른 학문 분야로도 파급돼 남북 학술 교류 전체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북한의 조선사회과학자협의회 등과 공동 주최하는 남북 공동학술회의는 올해 3회 대회를 처음으로 평양에서 열 예정이다. 그 동안 학술회의를 위한 남북 왕래가 수월치 않아 부득이 선양에서 두 차례 행사를 치렀다. 이번 회의 주제는 '우리 역사에 나타난 민족 공동체 의식과 항일 투쟁사'.
9월20일부터 28일까지 인민문화궁전에서 열기로 잠정 합의한 이 학술회의에는 장을병 정문연 원장과 이문원 독립기념관장 등 남한 학자 17명과 송동원 조선사회과학원 소장, 리철 조선사회과학자협의회 부위원장 등 북한 학자 20명, 김병민 옌볜대 총장, 최문식 옌볜대 민족문화원장 등 재중 동포학자 5명이 참가한다.
이밖에도 10월에 북한 학자들이 참여하는 동북아 국제 학술회의를 준비하고 있는 서울대는 '통일 후 국호 선정에 관한 연구' 등 회의 주제와 개최지 등을 협의하기 위해 국사학과 노명호 교수를 비롯한 준비단을 평양에 파견했다.
국사편찬위원회도 9월16∼23일 중국 하얼빈(哈爾濱) 징보(鏡泊)호 인근에서 '중국 동북지역 각 국민들의 생활과 항일 투쟁'을 주제로 남북 교류 학술대회를 연다. 남북 학자들의 상호 이해와 역사학 관련 자료 교환을 목적으로 3회 째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남북 학자는 물론 재중동포 학자와 일본 학자도 참가한다. 국사편찬위 김용곤 편사기획실장은 "여건이 되면 다음 대회부터는 중국 등 제3국이 아니라 서울이나 평양에서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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