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SICAF 행사에는 '카우보이 비밥'을 만든 일본의 와타나베 신이치로, 영국의 단편 작가 폴 부시 등이 내한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대중적인 인기는 와타나베 신이치로가 최고였지만 청중의 탄성을 가장 자아낸 행사는 헝가리 감독 차코 페렌(Cako Ferenc·53)의 모래 애니메이션 실연이었다.이 공연은 단편애니메이션분야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차코 감독이 창안한 모래 애니메이션을 직접 선보이는 무대.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차코 감독은 하얀 유리판 위에 모래를 뿌린 뒤 손가락 만으로 그림을 그렸고, 이 모습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현장 중계됐다. 불과 6∼8분의 짧은 공연이었지만 갈매기가 여자얼굴이 되고, 다시 포옹하는 남녀로 바뀌었다가 새로 날아가는, 환상적인 그림이 손끝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면서 관객은 환호를 멈추지 않았다. 당초 개막식 때만 보여줄 계획이었으나 인기가 너무 높아 폐막식에서 다시 공연됐다. 예술가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차코 감독이 모래 애니메이션을 구상한 때는 80년대 중반. 헝가리 국립예술대에서 그래픽을 전공한 차코 감독은 졸업과 동시에 헝가리 최고의 파노니아영화제작사에 들어갔다. 애니메이션을 위해 사물 인형 클레이를 골고루 익히던 중 좀더 색다른 소재를 찾아 설탕 커피에 이어 모래 애니메이션에 도전해봤고 "모래가 가장 손에 맞아" 모래 애니메이션을 창안했다. 그는 "모래는 적게 쓰면 환한 색깔이, 많이 뿌리면 어두운 색깔이 나오는 등 색상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그가 쓰는 모래는 평범한 바다모래. 씻고 말려서 몇 년째 같은 것을 쓰고 있다.
1987년 클레이와 모래 애니메이션을 결합해 만든 작품 '아브 오보'(Ab Ovo·35미리 7분)가 1989년 칸 영화제 최고 애니메이션상과 안시페스티벌 최고 단편영화상을 받은데 이어 1989년 모래 애니메이션만으로 만든 '재'(원제 Hamu·35미리 6분)가 1994년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받았다. 그는 89년부터 모래 애니메이션의 공연화를 시도했는데 높은 관심을 모아 핀란드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는 물론 이스라엘에서까지 공연을 가졌다. 유럽 각국에서 워크숍을 마련하기도 했다.
모래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모래의 독특한 질감이 마치 동양화와도 같은 시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데 있다. 이번 폐막식에서 선보인 공연에서는 편지를 쓰는 여자가 배로 변하더니 남녀가 마주한 모습이 되는가 하면 남녀가 함께 날아가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손가락을 약간만 움직이면 두 사람의 머리가 눈동자로 변해서 두 마리의 새가 되고, 다시 그것이 두 사람의 옆모습이 되어 포옹을 한다. 모래를 싹 지웠다가 다시 살짝 살짝 뿌려주니 바닷가에서 치맛자락을 휘날리는 여자의 모습이 나타나곤 멀리 떠나는 배에 손을 흔드는 모습으로 바뀐다.
그는 "80명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1만5,000명이 관람한 적도 있다"고 자랑한다. 지난해에는 발레공연까지 함께 했더니 관객 반응이 더욱 좋아 음악 춤 모래 애니를 합친 공연을 올해부터 더욱 많이 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헝가리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국가 지원이 줄어들어 작품의 질이 예전만 못하다"며 "한국 애니메이션은 수준이 고르지만 미국 일본 작품과 특성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한국만의 독특한 색깔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작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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