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한해를 보내는 의식으로 서해안 일몰 구경이 꼽히고 있다.'해넘이=보내기'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여름도 일몰과 함께 간다. 고즈넉하게 여름을 보내는 일몰의식을 치를 수 있는 바닷가를 꼽아본다.
전형적 서해포구 정취 '물씬'
남당항(충남 홍성군 서부면)
남당은 작은 포구지만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수많은 해산물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다. 새조개, 광어, 우럭 등이 많이 난다. 바로 앞이 천수만이다. 천수만은 물고기가 산란을 하기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남당항은 분위기가 좋다. 천수만으로 길게 뻗은 방파제, 물이 빠지면 끝없이 펼쳐지는 갯벌, 갯벌을 온통 뒤덮고 있는 게의 무리 등 전형적인 서해안 포구의 정취를 갖고 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 작은 항구는 외지인들로 북적인다. 대하가 대량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포구 양쪽으로 대하구이를 파는 집이 늘어서 있고 자동차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남당항은 일몰이 아름답다. 해는 바다로 떨어지지 않고 천수만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길게 누운 안면도로 진다. 호수 같은 천수만의 물이 노을을 반사하는 가운데 고깃배에서 내린 어부들의 모습이 검은 실루엣으로 반짝인다.
남당항 바로 앞 3.7㎞ 지점에 푸른 섬 죽도가 있다. 올망졸망한 8개의 섬이 달라붙어 있다. 24가구 70여명이 사는 유인도로 1시간30분 정도면 모두 구경한다. 물이 빠지면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여객선은 없다. 남당항에서 낚싯배를 타거나 개인적으로 배를 빌려야 한다.
홍성은 일제시대 조국애를 불살랐던 두 영웅의 고향이다. 만해 한용운과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생가가 이 곳에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결한 기상의 흔적을 느껴진다. 홍성군청 문화공보실 (041)630-1224.
산위로 해가 져 '황금노을'
사량도(경남 통영시)
사량도는 통영시 서쪽에 자리잡은 섬이다. 동쪽으로는 통영시가, 서쪽으로는 남해도가 있고 그 사이에 오롯하게 들어있다. 뱀처럼 생긴 두 개의 섬, 상·하도가 나란히 이마를 맞대고 있다. 고성, 통영, 가오치항 등에서 배로 들어간다.
사량도 여행의 백미는 산행이다. 지리산(지리망산)이라는 걸출한 산줄기가 섬에 있다.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지리망산이었다가 아예 지리산으로 불린다. 높지는 않지만 거친 바위 능선이 연이어져 있는 험한 산이다. 아기자기한 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두번째 테마는 낚시. 양지바른 갯바위는 모두 낚시터다. 볼락이 많이 난다. 이 곳의 볼락은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지금은 삼치와 농어가 많이 난다.
세번째 테마는 낙조이다. 상도에서 보아야 좋다. 섬을 절반 정도 에두르는 비포장 도로가 있다. 돈지라는 작은 마을 뒤편으로 언덕이 있다.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사량도의 일몰은 바닷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남해도의 거친 산 위로 진다. 해가 수평선으로 바로 떨어지면 붉은 기운이 강하지만 산으로 지면 황금색이 강하다. 남해도에 해가 걸렸을 때 온통 세상이 황금색으로 바뀐다. 사량법인 어촌계 해운사업소 (055)641-6343.
하얀 소금 모으는 진풍경도
석모도(인천 강화군 삼산면)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일몰 명소 중 하나이다. 일몰 구경이 아니더라도 석모도 가는 길은 너무나 즐겁다. 차 타고, 배 타고, 걷고….
본격적인 여행은 강화 외포리에서 시작된다. 외포리에서 석모도행 카페리가 출발한다. 여행객 대부분이 차를 갖고 섬에 들어가기 때문에 포구에는 사람 대신 차가 줄을 선다. 카페리는 대형이다. 차가 배 위에서 U턴해 정열한다. 승용차 50대도 들어간다. 배를 타기 전 새우깡 한 봉지가 필수. 하얀 갈매기떼가 배를 따른다. 사람들이 던져 주는 새우깡을 먹는다. 던져주는 먹이에 길들여진 이들은 물고기를 잡는 본능마저 잊은 듯 가끔 식당가의 쓰레기통까지 뒤진다. 그래서 '거지 갈매기'라고도 불린다.
10분 남짓이면 석모도 선착장이다. 낙조의 명소인 민머루 해안언덕은 선착장의 반대편에 있다. 일몰 시간을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석모도 여행을 한다. 가장 유명한 곳이 보문사.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창건된 절이다. 일명 '눈썹바위'라는 석불이 있다. 산 중턱의 커다란 바위에 그냥 양각으로 새겨놓았다. 진심으로 빌면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민머루해안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또 하나의 석모도 명물이 있다. 삼량염전이다. 오후에 찾아가면 하얀 소금을 모으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민머루해변은 광활한 갯벌이 펼쳐지는 곳. 물이 빠지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일몰의 포인트는 해변 뒤쪽으로 난 언덕길. 길을 따라 잠시 올라가면 서쪽 해안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해는 거대한 송전탑 뒤로 진다.
40리 광활한 해변 사막같아
임자도(전남 신안군 임자면)
임자도(荏子島)는 깨가 쏟아지는 섬이다. 깨가 많이 나서 그런 이름이 붙긴 했지만 실제로 곡식과 해산물이 풍성한 풍요로운 섬이다. 특히 새우젓이 유명하다. 임자도 새우젓은 맛이 좋아 드럼통 1개 분량의 값이 1,000만원을 호가한다. 작은 트럭에 10드럼을 싣고 나가면 1억원을 버는 셈이다.
임자도에는 큰 해변이 있다. 아니 거대한 해변이라고 해야 옳다. 대광해수욕장이라 불리는 백사장인데 무려 40리이다. 끝에서 끝까지 왕복하려면 한나절이 걸린다. 아무리 피서객이 많이 몰려도 절대 복잡하지 않다. 대광해변에서의 낙조가 일품이다. 해는 해변 정면으로 지지 않는다. 해변을 엇비슷하게 끼고 떨어진다. 마치 사막처럼 보이는 광활한 해변에서의 일몰. 독특한 풍광이다.
/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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