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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네덜란드 훈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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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네덜란드 훈풍

입력
2003.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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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어린이는 방파제 길을 따라 하교하다가 깜짝 놀랐다. 방파제에 작은 구멍이 뚫려 물이 조금씩 새고 있었다. 작은 구멍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커지고, 마침내 둑이 무너지면 바닷물이 마을을 휩쓸어 버린다. 구멍을 막을 물건을 발견할 수 없자 그는 손가락으로 막았다. 그러면서 도와줄 사람을 기다렸다. 사람은 오지 않았다. 구멍은 더 커져서 손가락 대신 다시 주먹으로 막아야 했다. 아무도 오지 않은 채 밤이 되고 추워졌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한스를 발견했을 때, 그는 어깨까지 구멍에 넣은 채 숨져 있었다. 그가 마을을 구한 것이다. 초등학교 땐가 교과서에 실려 있던 네덜란드 어린이의 슬프고 갸륵한 실화다.■ 이 나라의 국토는 25%가 바다를 막아 만든 간척지(폴더)다. 바닷물을 퍼내는 풍차가 팔을 휘두르며 부르는 사람처럼 이채롭지만 정겹다. 저지대에서는 예쁜 튤립들이 자란다. 풍차와 튤립의 땅에서 훈풍이 우리 나라로 불고 있다. 마음속 녹슨 기억의 풍차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이 나라의 히딩크 감독이 축구4강 꿈을 이뤄 준데 이어, 올해는 우리 나라를 서양에 알린 하멜의 표류 3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떠들썩하다. 7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네덜란드 작가 12인전이 열렸고, 저쪽 암스테르담에서는 10월까지 한국현대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 또 11월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는 '위대한 회화의 시대: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이 개최되고 있다. 루벤스의 '젊은 여인의 초상', 렘브란트의 '깃 달린 모자를 쓴 남자' 등 유화 50점이 전시돼, 인물화에 각별히 정열을 쏟았던 그들의 명성을 확인시켜 준다. 네덜란드인의 회화적 재능은 경이로운 작가 고흐로 이어진다. 영롱한 색채의 아름다움, 광기에 가까운 예술적 집념, 자살로 막을 내린 비극적 삶은 서양 미술사에서 불멸의 신화가 되었다. 그는 뒷날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으나, 작품은 고국에 더 많이 남아 있다.

■ 새로운 노사모델 바람도 불어 왔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 '폴더 모델'이라는 모델을 개발했다. 노동자의 임금을 제한하는 대신, 노동시간을 단축하기로 한 것이다. 이 모델이 우리에게 맞느냐, 안 맞느냐 하는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제도보다는 정신과 문화다. 바다의 위협에 직면해 살아온 네덜란드인은 협력하지 않으면 모두 물에 빠져 죽는다는 엄연한 현실을 알고 있다. 공멸을 피하는 실천적 교훈을 한스 어린이와 폴더 모델은 가르쳐 주고 있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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