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번 결혼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현재의 아내인 수와 1983년에 만나 20년 간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다. 수와의 결혼 전에 경험한 두 번의 결혼은 결혼 생활이라 하기에는 너무 불행한 만남이었다. 가정이라면 그 나름대로의 격식이 있어야 하는데 두 번다 가정이라기보다는 편의를 제공해 주는 숙소에 지나지 않았다.전에 간단히 소개한 적이 있지만 첫 번째 아내는 다카코라는 일본 여성이었다. 다카코는 일본 유학시절에 만났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 나는 이성에 대해 상당히 고민을 하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가장 이성을 갈망할 때 그것을 이루지 못할 경우 결국 이상을 버리고 아무나 좋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때 일본에서 한국 여성을 만나기란 무척 어려웠고, 간혹 눈에 띄는 한국 여성은 대부분 정혼한 남자가 있었다. 혼자서 방황하던 시기에 우연히 다카코를 만나 2년 동안 살기로 했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계약 결혼이었다. 그녀 덕분에 나는 학도병으로 끌려갈 위기를 넘겼고 함께 고향에 가서 결혼식을 올리고 살았다. 하지만 광복이 되고,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다카코가 일본으로 돌아가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둘은 지금 미국과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두 번째 아내는 모델을 구하다가 알게 됐다. 그때도 나는 결혼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없었다. 한편으로 결혼 생활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안정을 얻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67년 미국으로 가게 되었을 때 관계에 종지부를 찍으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게 용진이가 태어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 함께 미국에서 정착했고, 처음에는 별 문제없이 지냈다. 71년 우드미어 개인전 개막 때는 가족들이 모두 참석해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때 큰 딸 용자는 개막 행사에서 전통춤을 선보여 갈채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예술과는 전혀 동떨어진 그녀와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사람은 나의 예술과 그 결과물인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파리에서 작품 대부분을 생활비를 충당하려고 헐값에 팔아버려 소장품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그림을 팔지 않아도 생활비가 충분했기에 작품을 팔지 않고 후일을 위해 소장하려고 다짐했는데 전처는 "팔리지도 않는 그까짓 그림을 그려서 뭐하느냐"며 시비를 걸어 왔다. 이때부터 나와는 완전히 절연상태에 있었다. 그때 마침 현대미술관에서 귀국전을 하게 되어 가족을 두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됐지만 그녀는 몇 년 전부터 이혼 수속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혼 조건은 그림은 내가 가져가고 미국에서 마련한 3개 사업체와 집을 갖겠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뒤로는 이혼수속을 밟으면서도 여전히 내 사생활에 간섭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내게 해프닝이 있었다. 미국에서 귀국해 거처가 없어 낙원아파트에 있는 서울대 출신 제자의 아파트에서 기거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는 강남에 자택이 있어서 그 방은 화실로 쓰고 있었으므로 그가 집으로 간 후 나는 밤새워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가 나에게 친절했던 것은 내가 그에게 이용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지희라는 여성을 모델로 소개 받아 '지희의 상'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미국의 전처에게 "김 선생님이 여자를 사귀고 있으니 사모님이 나오셔서 손을 쓰셔야 하겠습니다"고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얼마 후 미국 법정에서 이혼 통지서가 날아왔다.
그런데 내가 주도하는 그룹전 멤버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 제자의 화풍이 전시회 성격에 맞지 않아 제외했다. 그러자 그는 아파트에서 나가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나는 파리에서도 팔지 않고 소장했던 '한국의 봄'을 호암미술관에 팔아 그 돈으로 그 아파트 옆집으로 옮겼다.
아무튼 나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이 때는 누드그림을 그리기 위해 적절한 모델을 찾아 나섰고, 그 모델들 덕분에 내가 그리고 싶은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다. 내가 여러 여자들과 바람직하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도 떠돌았으나 철저히 무시해버렸다. 그리고 덕성여대 박석원 이사장이 찾아온 것도 이 무렵이었다. 나는 덕성여대에 부임했고 거기서 지금의 아내 '수'와 만났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