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했다면, 영화에 있어서 '체위는 에로의 척도'다. 한 편의 에로가 얼마나 창조적이며 도발적인가는 체위에서 판가름 난다.지난주 개봉한 '바람난 가족'. 이 영화를 보셨다면 한 장면에서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을지도 모르겠다. 영작(황정민)이 연(백정림)의 스튜디오에서 갖는 섹스 신에서 남자는 엎드려 있고 여자는 그 위에서 몸을 비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그것은 일종의 애무에 가깝겠지만, 에로 마니아 특유의 넓은 마음으로 포용한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체위'로 인정할 수 있다. 일본 에로 장르 중 하나인 '사우나 에로'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남성의 꼬리뼈 부분에 여성이 몸을 비비며 쾌감을 느끼는 고감도 에로틱 신이다. 이 장면이 신선했던 건 과거 한국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던 질척한 느낌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영화 '체위사' 명장면 콜렉션에 추가해도 될만한 광경이었다.
한국영화는 그다지 다양한 체위 테크닉을 발휘하지 못했다. 숱한 에로영화가 명멸한 1980년대에조차 70년대 호스티스 영화의 체위 미학을 그대로 답습했으니 이른바 '등짝 시네마'가 그것이다. 한국영화는 지독히도 남성이 위로 올라가는 '정상위'에 심취해 있었다. 하기야 과거 지독히도 보수적인 시절에는 고통을 느끼는 건지 희열에 들뜬 건지 알 수 없는 여자의 얼굴 클로즈업만으로 섹스 신을 묘사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 시절 한국영화에 체위란 없었다. 그러니 전희나 오르가슴이 묘사될 여지는 더욱 없었으며, 가벼운 애무조차도 있을 리 만무했다.
정상위의 영화는 남자의 건장한 등짝으로 스크린을 반 이상 가렸다. 가끔 마주보고 앉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류는 역시 정상위였다. 하지만 전설의 에로 컬트 배우 김구미자가 주연한 '애란'은, 지지부진했던 80년대 체위사에 종지부를 찍으며 후배위의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이 장면은 당시 맹아기였던 에로 비디오의 수위를 훌쩍 넘었으며, 특히 김구미자의 찌릿한 신음소리는 당시 고3이던 필자의 중간고사를 망칠 정도로 계속 귓가에 맴도는 강렬한 사운드였다.
또 한 번의 혁신을 위해서는 10년을 기다려야 했다. '노랑머리'와 '거짓말'. 어느 에로 배우의 회상에 의하면 남자의 둔부를 정면으로 잡은 '노랑머리'는 오히려 '거짓말'의 사도·마조키즘 컨셉보다도 혁명적이었다고 한다. 섹스 신의 카메라 앵글은 더욱 자유로워졌고, 이젠 더 이상 정상위 따위는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에로의 명장 봉만대 감독의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은 '체위 박물관'이다. 15편의 에로 비디오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세분화하면 10개에 가까운 체위로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영화 보면서 너무 체위 같은 하찮은 요소에 집착한다고? 하지만 체위의 다양화는 어쩌면 표현의 자유와 직결된 것일지도 모른다. 좀더 '오버'해 볼까? 체위는 이데올로기다!
/김형석·월간스크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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