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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자주국방론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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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자주국방론의 허와 실

입력
2003.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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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은 모든 국가들이 추구하는 중요한 목표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주국방이란 그리 달가운 단어가 아니다. 박정희 정권이 자주국방이란 이름아래 유신의 압정을 강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주국방하면 유신의 어두운 기억만이 떠오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어쨌든 이후 통치자의 어록에서 사라졌던 자주국방이 다시 등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자주국방을 중요한 국정목표로 들고 나온 것이다.그 동안 우리가 국방을 주한미군에 크게 의존해 왔다는 점, 최근 미국이 주한미군의 후방배치를 추진하는 등 역할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노 대통령의 자주국방론은 올바른 방향이며 손뼉을 쳐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 문제가 남는다. 우선 지금이 이 문제를 제기할 적합한 때인가 하는 점이다. 많은 국민들은 노 대통령의 자주국방론을 뜬금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 역시 시기적으로 적합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노 대통령의 생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촛불시위, 북한 핵문제 등으로 미국이 주한미군의 후방배치를 추진하는 등 주한미군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고, 일각에서는 한미관계와 관련해 노 대통령이 후보시절과 달리 너무 굴욕적으로 변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제기해 왔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국군의 날이 아니라 광복절의 주 의제로 삼음으로써 자주국방이 진정한 광복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광복절은 자주국방을 주 의제로 삼기에 적합한 시기는 아니었다. 연이은 자살소동을 몰고 오고 있는 서민생활의 파탄으로부터 정대철, 권노갑 사건과 관련된 정치개혁문제 등 국민들이 비상한 관심을 갖고 대통령의 위로와 자성, 해법을 기다리고 있는 사안들이 산적해 있다. 그리고 이들 문제들을 제쳐두고 자주국방을 이야기하자 많은 국민들이 뜬금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를 통해 바로 이들 현안들에 대해 특유의 정공법으로 국민들을 감동시키고 그 동안 떨어진 국민적 지지를 다시 모아야 했다. 이렇게 국민적 지지를 모은 뒤 자주국방을 외칠 때 힘을 받는 것이지, 지금 같은 상태에서 자주국방을 외친들, 힘이 실리지 않는다.

또 노 대통령의 자주국방론에 내재한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면서도 군비증강을 통한 자주국방이라는 것이 바람직하고 현실적인 우리의 목표이며, 과연 얼마나 많은 국방예산을 투입해야 자주국방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이 같은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자주국방이 북한에 대한 자주국방만이 아니라 군사 대국인 러시아와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열강에 대한 자주국방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복지예산 등을 깎아 군비증강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경제규모, 인구, 기존의 군사력 등을 고려할 때 러시아, 중국, 일본에 대한 전면적인 군비경쟁을 통한 자주국방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든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군비증강을 통한 자주국방론이 아니라 남북한과 동북아의 주요 국가들이 상호군축을 통해 동북아의 평화를 추구하자는 동북아 평화군축론을 제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동북아 평화군축을 통한 자주안보론이라고나 할까? 다시 말해 설사 우리가 평화주의와 같은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론을 택하더라도, 러시아, 중국, 일본 등에 대한 우리의 한계를 고려할 때 우리의 해답은 군비증강을 통한 자주국방이 아니라 동북아 평화군축을 통한 자주안보이다. 나아가 우리가 노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제 2의 박정희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우익민족주의가 아니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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