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13일 오후, 서울 금천구 시흥 5동의 작은 놀이터 은행공원에 어린이와 어머니 80여 명이 모였다.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길 건너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을 살리기 위한 행사 자리다. 자동차가 쉴 새 없이 오가는 왕복 4차선 도로와 맞붙은 손바닥 만한 놀이터에서 엄마들의 노래가 울렸다. '도서관이 방글방글 웃는다/도서관이 하늘보고 웃는다/우린 도서관을 사랑해/참 사랑해.' 어린이들은 도서관을 살리자는 마음을 담은 걸개그림에 색칠을 하고 동요를 불렀다. 한인수 금천구청장이 왔다. 셋방살이 중인 구청이 청사를 마련하면 그 안에 어린이도서관을 만들도록 애써보겠다고 말하자 어린이와 엄마들이 '와!' 하고 환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지난해 9월8일 문을 연 이 도서관은 금천구의 동화읽는어른 모임 '함박웃음'이 만들어 회원 엄마들의 회비와 자원봉사로 꾸려왔다. 상가건물 2층에 자리잡은 2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지역 어린이와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온돌을 깐 바닥, 낮은 책꽂이 등 어린이들이 편하게 책을 볼 수 있게 내부를 꾸미고, 책 한 권도 세심하게 살펴 좋은 것만으로 골라 갖추는 등 엄마들의 정성이 듬뿍 밴 곳이다. 엄마들의 열성에 감탄한 아버지들도 일요일마다 돌아가며 도서관에 나와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등 각별한 사랑을 쏟아왔다. 문제는 지금 세든 상가 건물이 재건축을 위해 12월 철거될 예정이어서 이사를 해야 하는데 그럴 돈이 없는 것. 이날 행사는 이런 사정을 알리고 이전 비용을 모으고자 열었다. 오전에는 바자회도 열렸다. 처음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울 때 썼던 헬멧을 내놓은 꼬마, 신혼시절에 산 액자를 기증한 주부 등 도서관 살리기에 써달라며 나온 약 1,000 점의 물건이 거의 다 팔렸다.
전국에 100개 정도로 추산되는 민간 어린이도서관은 대부분 이 도서관과 비슷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지난 3, 4월 두 달간 40군데의 실태를 조사한 데 따르면, 대부분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한 채 회비와 자원봉사로 어렵게 꾸려가고 있다. 개인이나 단체가 운영하는 이들 도서관의 가장 큰 고민은 안정적 공간 확보와 운영비 마련이다. 대개 상가나 아파트를 임대하거나 교회, 복지관 건물을 빌려 쓰고 있다. 20평 이하(42.5%)나 21∼35평(20%)으로 규모는 작지만 2,000∼5,000권(62.5%)의 엄선된 양서를 갖추고 있다. 편안하고 아늑하게 꾸며 아이와 엄마들이 좋아하고, 독서지도를 비롯해 저마다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이런 공공성에도 불구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관련법과 예산이 없어 고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아버지 모임 이석열 회장(41)은 "전셋돈 3,000만원이 없어 쩔쩔매는 등 사는 데 여유가 없고 힘든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일 하자고 힘을 합쳐 도서관을 시작해서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는데 문을 연 지 1년도 안돼 위기를 맞았으니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한다. 놀이터에서 엄마들은 노래를 불렀다. '도서관에 앉아 그림책 사이로/반짝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세상은,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린이도서관에서 미래의 희망을 가꾸려는 이들의 뜻이 결실을 맺도록 관심과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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