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고가도로요? 그거 박정희 대통령이 워커힐 호텔 편하게 가려고 만든 겁니다. 당시 국내에 시멘트는 남아돌고 철근은 부족해 골조가 부실해졌습니다. 임명제 시장은 임명권자에게 충성하는 법입니다."1970년대 서울시 도시 계획을 진두지휘한 이래 서울시립대 대학원장까지 지낸 손정목(75)씨는 노령이 무색할 만큼 호탕하고 솔직 담백했다. "하늘이 나를 세상에 보낼 때 써서 남기라는 사명을 부여했다"는 마음가짐으로 혼신의 공을 들여 쓴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한울 발행) 5권이 마침내 빛을 보았기에 더욱 기운이 났는지도 모른다.
66년 김현옥 시장부터 양택식, 구자춘 시장을 거쳐 80년까지 15년 동안 서울의 도시 변모 과정과 건설 사업 뒤에 얽힌 비화를 꼼꼼히 기록한 책이다. 서울의 모습이 가장 많이 달라진 때이며, 지금 서울의 틀이 잡힌 때이다.
"여태까지 대한민국 전체 도시 계획에 대해 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아마도 제가 져야 할 겁니다."그는 서울 격변기의 70∼77년 서울시 기획관리관과 도시계획국장을 겸직한 데다 38세 때부터 30년 가가이 중앙도시계획위원을 지냈다. 서울시사편찬위원장까지 역임했고 서울시립대에서 17년 넘게 도시계획을 강의했다.
이 책에서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말 많았던 사업의 뒷얘기. "과천 서울대공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핵무기 개발 기지를 건설하려고 했던 곳입니다. 은밀히 추진하느라 제가 은행에서 11억원을 빌려 박 대통령의 '혁명동지'인 김재춘에게 주어 130만 평을 사들였습니다. 하지만 눈치를 챈 미국의 저지로 무산됐죠."
그가 털어 놓은 서울 개발 계획에는 보이지 않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다. 북한의 남침을 고려해 군사 목적에서 지은 시설과 청와대에 잘 보이기 위해 시작한 공사가 적지 않다는 것. 남산 1·2호 터널은 전시에 용산구와 중구 주민 각 15만 명을 대피시키려는 목적으로, 소공로 지하상가는 장기전 때 서울시청이 옮겨갈 자리로 각각 만들었다.
청계 고가도로처럼 강변도로 건설 역시 박 대통령이 김포공항에 편하게 갈 수 있게 하려는 발상에서 비롯했다. 서울의 1호 아파트 단지인 금화아파트는 실무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서 잘 보이도록 하겠다는 목적 때문에 산에 지었다. "린든 존슨 미 대통령 방한 때 남산 판자촌이 보도되자 그걸 가리려고 세운 게 프라자 호텔입니다."
그는 "세계적 대도시치고 서울만큼 인구밀도가 높은 곳도 드물다"며 "그런 걸 생각하면 서울도 제법 편리한 대도시"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경험과 국회 속기록, 용역보고서와 재판 판결문까지 동원한 이 책에는 보다 나은 수도 개발을 바라는 그의 바람도 읽을 수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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