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청이 얼마 전 '외국어 인지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2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97.4%가 가장 익숙한 외국어로 '스트레스'를 꼽았다. 장기 불황과 취업난 때문이라고 분석됐다. 또 일본 후생노동성은 최근 급증하는 샐러리맨들의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해 피로 축적도를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점검표를 만들어 공개했다. 그랬더니 컴퓨터 접속자가 폭주해 서버 기능이 정지될 정도였다. 지난해 일본에서 산재로 인정된 과로사는 160건으로 전년에 비해 2.8배 늘었으며, 집계를 시작한 1987년 이후 가장 많았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비슷할 것이다. 외환위기 때보다 경기가 더 좋지 않다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올 들어 7월 말까지 자살한 사람은 6,005명이었는데 동기는 염세 낙망 등 비관이 가장 많았고, 질병 빈곤 등의 순서였다. 가난 때문에 자살한 사람은 408명으로 크게 늘었는데, 지난해까지는 가정불화, 정신이상 등이 빈곤보다 많았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 및 생활 문제로 자살한 사람은 7,940명으로 경찰의 자살자 통계가 시작된 1978년 이후 처음으로 7,000명 선을 넘었다.
■ 생활이 어렵다 보니 은행 적금과 보험사 장기 보험을 중도에 해지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올 들어 5월까지 7개 시중은행의 월 평균 적금해약 금액이 지난해에 비해 최고 57%까지 증가했다. 생명보험 등을 해약하는 가입자들도 급증해 23개 생명보험사들의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효력상실 해약률은 14.8%로 전년도보다 1%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더 나아가 돼지 저금통도 깨고 있다. 올 상반기 주화(동전) 순발행 규모는 3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4.1% 감소했다. 한국은행 통계다. 저금통에 들어 있는 동전을 꺼내 쓰는 가정이 늘었기 때문이다.
■ 반면 고급 술집인 룸 살롱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식품의약품 안전청에 따르면 지난해 유흥종사자(접대부) 서비스를 받으면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유흥주점은 전년보다 10.3% 많은 2만7,757개였다. 이에 비해 단란주점은 3.6% 감소해, 서민들은 술집 출입이 줄었지만 부유층들은 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에서는 생활이 어려워 바짝 엎드리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흥청망청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서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돈이 뇌물 형식으로 오가는 판이다. 이런 우울한 통계를 언제쯤 보지 않을 수 있을까.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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