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엔 새로 선보이는 한국 영화가 없다. 아주 간만에. 외국 산 블록버스터도 없다. 대신 화려하진 않지만 강한 개성을 지닌 몇 편의 작품들이 선보인다.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할리우드 특수효과 전문가 스탠 윈스턴('쥬라기 공원', '에일리언2', '터미네이터 2·3')이 특수효과에 제작까지 맡은 '데드 캠프'(Wrong Turn, 감독 롭 슈미트)는 하드 코어 성 공포 영화를 선호하는 팬들이 반색할 깜짝선물이다. '식스 센스' 이후 한 동안 주춤했던 '스크림' 류의 강력 난도질 영화(Slasher/Splatter Movies)인 것이다. 근자의 국내외 호러물이 다소 심심했다면 영화가 적잖이 반가울 지도 모르겠다. 비위가 약한 분들이라면 절대 보지 말아야겠지만.
개인적으로 추천하고픈 작품은 두 수작, 프랑수아 오종의 '스위밍 풀'(사진)과 스파이크 리의 '25시'다. 지난해 영화제 형태로 소개되며 국내 영화 팬들에게도 다소 익숙해진 오종은 1990년대 프랑스가 낳은 기린아다. 가히 엽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특유의 도발적 영화세계로 악명 높은 악동이기도 하고. 한편 '똑바라 살아라' '말콤 X' 등 대표작을 통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리는 이른바 블랙 시네마의 대명사로 간주되는 명장이다. 프랑스와 미국, 국적뿐 아니라 백과 흑이라는 감독의 피부 색깔의 차이만큼이나 두 영화는 대조적으로 비친다.
전자는 수영장이란 미시적 공간을 중심축으로 중년의 여류 베스트셀러 작가 사라 모튼(샬롯 램플링)과 딸뻘인 천방지축 야성녀 줄리(뤼디빈 사니예) 사이에 펼쳐지는 에로틱 심리 미스터리다. 미스터리답게 말미의 극적 반전이 눈길을 끌지만, 개인적으론 더욱 눈길을 끄는 건 정교한 미장센과, 처음엔 적대적이나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서로에게 동화되어가는 캐릭터 상의 변화 등이다.
한편 후자는 뉴욕이란 거시적 공간을 주 무대로 마약거래로 인해 7년 형을 선고 받은 한 사내 몬티 브로건의 만 하루를 추적, 묘사하는 관계와 성찰의 드라마다. 특히 9·11 테러에 대한 감독의 진술이기도 한 '25시'는 작품의 사회정치적 문제의식에서 '스위밍 풀'을 압도한다.
그럼에도 둘 사이엔 흥미진진한 공통점이 한둘이 아니다. 올해 각각 칸과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수상엔 실패)했다는 따위의 텍스트 외적 요인을 말하는 건 아니다. 우선 두 영화 공히 인물들의 성격화가 인상적이다. 영화의 참맛은 따라서 치밀한 플롯 속에 배열된 사건보다는 인물 간의 상호작용에서 우러난다. 그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한층 더 인상적이다. 흠잡을 데가 거의 없을 만큼. 편집 리듬은 말할 것 없고 영화의 주된 톤을 좌우하곤 하는 음악 효과 역시 그렇고.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그러나 감독의 어떤 중간결산적 혹은 단절적 변화들이 뚜렷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그 변화가 예술가로서의 성숙으로 비칠지 대중적 영합 내지 타협으로 비칠지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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