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사상 처음으로 한총련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전파를 탄다.19일 밤 11시5분 방송되는 KBS 2TV 드라마시티 '문제작'(극본 황선영, 연출 이진서)은 한 방송사 PD가 한총련 수배자 문제를 다룬 드라마를 만들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14일 시사회에서 미리 본 '문제작'은 일부 작위적인 설정이 눈에 거슬리고 '양심과 사상의 자유'라는 주제를 드러내는 데도 미흡했지만, 작품 속에서 그려지듯 민감한 사회 문제를 다루기 꺼리는 드라마 제작 현실에 도전장을 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드라마 PD로 데뷔를 앞둔 남철(정찬)은 공모에서 탈락한 극본들을 뒤적이다 한총련 수배자의 아픔과 사랑을 그린 작품을 발견한다. 작가 지망생인 국문과 대학원생 영경(박은혜)이 대학 시절 첫사랑인 운동권 선배 준수를 모델로 쓴 작품이었다. 남철은 사회적 파장과 시청률을 걱정하는 간부들을 설득해 드라마 제작에 나선다. 그 무렵 준수(정재곤)가 검사가 되어 영경 앞에 나타나고, 영경은 달라진 준수의 모습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준수와 결혼하기로 한다.
그러나 드라마가 방송되기 전날 방송불가 결정이 내려진다. 영경의 큰아버지인 방송사 사장이 준수의 부탁을 받고 방송을 금지한 것. 준수의 태도를 미심쩍어 하던 영경은 준수가 검거된 뒤 한총련 탈퇴서와 준법서약서를 쓰고 동료를 밀고한 대가로 풀려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파혼을 결심한다. 우여곡절 끝에 드라마는 방송되고, 방송국 안팎에서 호평을 받는다.
이 드라마는 무겁고 민감한 한총련 수배자 문제를 극중 극 형식으로 녹여냄으로써 메시지 전달과 함께 극적인 재미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한총련 문제가 극의 '양념'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준법서약서를 쓰고 검사로 출세한 사실이 밝혀져 사랑을 잃은 준수와 끝까지 양심을 지켜 옥고를 치른 뒤 사랑을 얻는 극중 극의 주인공 준석을 대비해 '양심의 자유'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방식도 지나치게 도식적이다.
'문제작'은 한총련 문제보다는 드라마 PD의 고뇌를 다룬 대목에서 빛이 난다. 남철처럼 이 작품이 데뷔작인 이 PD는 "사회 현안을 다룬 '문제작'이 없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도발적인 연출의 변을 내놓았다. "한총련의 노선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라면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드라마 PD는 엔터테이너인 동시에 저널리스트여야 한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재미있고 공익적인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이 PD는 그런 의지를 공표하듯이 마지막 장면에서 남철이 이번에는 전교조를 다루겠다고 덤비는 모습을 그렸다. 다음에는 어떤 '문제작'을 들고 나올지 기대된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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