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사태로 뉴욕 등 도심에서는 음식이 상할 것을 우려한 식당들이 공짜 길거리 축제를 벌이는가 하면 박물관에서나 봄직한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다시 등장하는 등 곳곳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냉장고가 가동되지 않아 식품점들은 고기 치즈 빵 채소 해산물 등을 내다 버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맨해튼의 한 식당에서는 오도가도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 즉석에서 닭 연어 햄버거 등으로 밤새 바베큐 파티를 벌여 문전성시를 이뤘다.
트렌지스터 라디오도 인기를 끌었다.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시민들은 건전지로 작동하는 낡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들고나와 속보에 귀를 기울였다. 첨단 문명기기가 단숨에 무용지물이 되면서 종이부채가 다시 등장했고, 휴대폰이 먹통이 되자 시민들은 공중전화 부스 앞에 장사진을 쳤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현금지불을 요구하는 주인과 손님 간에 옥신각신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최악의 정전사태가 초래한 경제적 피해에 대한 추산은 수십억 달러에서 수백억 달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10조 달러가 넘는 미국경제를 생각하면 치명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정전으로 3,000만 달러의 매출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되는 영세소매점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피해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보험금 청구가 잇따르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레고리 세리오 뉴욕주 보험감독관은 "갑자기 전기가 다시 공급되면서 냉장고 등이 불탈 경우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겠지만 냉장고에 있던 고기가 피해를 봤다고 해서 보험금을 청구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려했던 약탈사태는 거의 없었다. 뉴욕 등 미국에서는 폭행·강도사건이 평상시보다도 적었다. 그러나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약탈 등 혐의로 40여명이 체포됐고 수도 오타와에서는 22건의 약탈사건이 신고됐다.
미국은 대체로 시민들의 질서의식이 돋보였던 반면, 이 같은 비상사태를 거의 겪지 않았던 캐나다는 다소 혼란스런 모습이었다. 정전 사태가 난 뒤 수시간 만에 나타나는 등 늑장 대처로 눈총을 받고 있는 멜 라스트만 토론토 시장은 15일 "이번 정전사태로 9개월 후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최대의 베이비 붐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