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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으로 읽어본 질병]<5>병을 부정하는 자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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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으로 읽어본 질병]<5>병을 부정하는 자기애

입력
2003.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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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병원이나 의사의 잘못을 많이 지적한다. 불친절하거나 치료과정에 잘못이 있다고 주장한다. 환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환자는 병을 고치고 싶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므로 당연히 의사의 권고사항에 전폭적인 협조를 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수 있다.의사의 입장에서 답답한 것은 예약 환자가 정해진 시간에 사전 연락 없이 안 나타나는 것이다. 정보화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전화나 인터넷으로 진료시간을 예약하는 방법이 뒤늦게 도입되기 전까지 예약을 위해서는 병원에 직접 갈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환자들'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환자를 돕기 위한 마음에서 시간을 들여 어떤 검사나 치료가 필요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꼭 해야 한다고 말해도 거절 당하는 수가 꽤 있다. 의사의 치료적 권고를 거절해서 결국 병이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수도 흔히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왜 환자들은 약속을 안 지키고 의사의 권고를 거절하는가?

의사나 병원을 믿을 수 없어서라고 말하면 쉽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이유들이 있다. 병에 걸린 것에 대한 다양한 심리적인 반응 중에 제일 흔한 것은 부정(否定)이다. "내가 그런 병에 걸렸을 리가 없어!"라고 자신과 남에게 주장하는 것이다. 아프다는 것은 평소 꿈 꾸어 오던 '완벽한 인생'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완벽주의자이거나 자기애적인 경향이 심한 사람들은 자신이 병(특히 암과 같은 어려운 병)에 걸린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를 더 힘들어 한다. 환자 자신이 병이 없다고 스스로 다짐하니 약속시간을 잊거나 어기고, 의사가 아무리 간곡하게 권해도 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받지 않는다.

암에 걸려도 병원에 와서 일찍 알아내고 제대로 치료하면 완치되거나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일부 환자의 마음은 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환자는 소위 신통하다는 방법을 찾아 여기저기 병원 밖을 헤매고 다닌다.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이비 의약품, 그리고 마치 의료기기같이 보이는 그럴듯한 기계 등은 환자의 불안한 마음속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고 든다. 물론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며 이미 커다란 규모의 시장으로 전개되고 있다.

현대의학의 최대 과제는 질병의 정복인가? 아마 아닐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외면하고 병원 밖에서 방황하는 환자들이 병원 안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도록 도울 것인가? 그것이 더 큰 과제일 수 있다. 첨단 의료기술시대에 자신의 병을 부정함으로써 쓸데없이 고통받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이는 매우 역설적인 비극이 될 것이다.

정 도 언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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