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일정이 확정됨에 따라, 전쟁위기로까지 치닫던 북한핵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일단 대화 국면으로 반전되고 있다. 그러나 북미간의 입장차이가 여전히 커 회담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북한핵문제 해결의 핵심은 북한체제의 안전보장이다. 어떤 국가가 핵주권과 핵무장을 포기하고 불평등한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체제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핵무기국가들이 해당 비핵무기국가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을 위협하지 않겠다는 안보보장을 해주어야 한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소극적 안보보장(NSA)이라고 한다. 1970년 NPT의 탄생과 1995년의 재연장 합의는 핵무기국가와 비핵무기국가들간에 이런 약속과 전제에서 가능했다.
북한핵문제가 풀리지 않은 일차적 책임은 미국의 비타협적인 자세에 있다. 미국은 북한이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방법으로 핵을 제거'하지 않는 한 협상할 수 없다는 '선 핵포기, 후 협상'을 주장하면서, 사실상 북한과 협상을 거부해 왔다.
최근에 상황이 진전된 것은 미국이 북한의 체제 보장문제에 대해 긍정적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직 부시 행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행정부의 서면보장과 의회의 결의, 다자 공동보장 방안'을 제시한 파월 구상은 회담 진전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여전히 북미불가침조약 체결을 주장하고 있지만, '파월 구상'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행의 수순과 방안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을 전면적으로 포기할 경우에 체제보장을 포함해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일괄 제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른바 포괄적 일괄대가방안이다. 이처럼 미국은 '선 핵포기, 후 협상'에서 한 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선 핵포기, 후 대가제공'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일을 완료해야 비로소 대가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실제로 타협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이 끊임없이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새로운 전제 조건들을 제시할 경우 해결의 끝은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포괄적 일괄대가방안은 비현실적이다. 포괄적 일괄적 타결, 단계적 동시적 이행방안으로 가야 한다. 현안문제들에 대한 타결은 포괄적 일괄적으로 하고, 이행은 단계적으로 하되 북·미가 단계별로 동시에 하는 것이다. 6자회담이 열리면 우선 북한과 미국은 북한핵의 폐기와 북한체제의 보장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원칙에 동의하고, 보완을 전제로 경수로사업의 지속을 포함해 제네바합의문의 기본틀을 유지하기로 합의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 아래 북한핵문제는 필자가 3월에 한 토론회에서 제시한 4단계 방안을 통해 해결한다.
우선 1단계로 북한은 동결 해제한 핵시설들을 다시 동결 조치하며, 반면 미국은 중유공급을 재개하고 경수로사업을 지속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요원들의 주재를 다시 허용하고, IAEA로부터 동결시설에 대한 안전조치를 수용한다.
2단계로 '현재의 핵'을 해결한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개발 의혹의 해소와 북한체제의 안전보장문제를 상호 해결한다.
3단계로 제네바합의문의 보완과 이행일정의 구체화를 통해 '과거의 핵'을 해결한다. 북한핵시설을 미동결시설, 미신고시설, 동결시설로 분류하여 사찰시기를 단계화하고 구체화한다.
마지막 4단계에서는 핵무기를 제외한 생화학무기와 같은 대량파괴무기와 미사일문제 등 미국이 제기한 이른바 안보상 우려사항에 대해 해결한다. 협상과 이행은 일방적인 양보와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고 상호적이어야 한다.
이 철 기 동국대 교수·평화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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