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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기업투명성·노조 함께 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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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기업투명성·노조 함께 풀자

입력
2003.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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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떤 항공사가 전국민 살 빼기 운동에 나섰다고 하자.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순진하게 칭찬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항공사가 왜?'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기름값 아끼려는 술책이거나, 아니면 '3등석 증후군'으로 인한 배상을 줄이려는 꼼수로 결론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명석한 추론이 '뚱뚱한 사람이 살 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항공사가 원하든 말든 살 찐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요즘 외국인들은 한국경제에 두 가지 충고를 반복하고 있다. 기업투명성의 제고와 전투적인 노사관계의 시정이다. 이들이 이러한 충고를 하는 것은 물론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수조원대의 분식회계가 숨어 있는 SK글로벌 같은 회사를 구입했다가 낭패 보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다. 좀 더 유연한 노조를 원하는 것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 인수합병을 통해서 회사를 취득했다가 가격을 올려 되파는 이들의 주특기가 고용보장을 요구하는 조흥은행 노조를 만나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속심을 꿰뚫어 본 뒤 기업투명성과 노사관계 개선은 별 필요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리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식민지의 쓰라린 경험 탓에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곧 '우리'에게는 손해라는 사고방식에 너무나 익숙해 있다.

하지만 경제하는 일은 전쟁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과 우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사실 외국인으로서는 우리 경제가 불투명한 기업과 전투적인 노조로 가득 찬 상태로 남아 있어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다. 한국 시장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그만이다.

정작 절실한 것은 우리들이다. 기업의 회계가 불투명하면 피땀 흘려 모은 우리의 저축이 부실기업으로 흘러 들어가 미아가 되어 버린다. 또한 전투적인 노조는 사실상 망한 기업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 저축과 세금을 대규모로 낭비하게 하고, 흥하는 기업의 수명을 급속히 단축시킬 것이다. 현 상태가 계속되면 국민소득 2만 달러는커녕 만 달러도 유지하기 힘들다.

점점 심화하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 속에서 약삭빠른 편의주의를 택하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불법 파업 이야기가 나오면 슬며시 뒤로 갔다가 재벌 지배구조 문제가 나오면 열을 올리는 진보가 있다. 보수 언론은 기업회계와 재벌 문제는 아직 건드릴 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가 노조가 외국인 투자를 막는다는 기사는 헤드라인에 장식한다. 기업투명성과 노사문제의 개선은 둘 다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둘 다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더구나 첨예한 보혁의 갈등 구조 속에서 어느 한 쪽만 추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다.

도대체 어느 쪽으로 튈지 영 불안하던 정부가 그래도 서서히 방향을 잡아가는 모습이다. 불투명한 대기업과 불법적인 노조활동의 문제를 동시에 공략하는 것은 중도를 지향하는 정부와 궁합이 잘 맞는 일이다.

사실 동북아 경제중심을 위해서나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위해서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무역과 성장의 동력을 창출하는 과업은 기업과 시장의 몫이다. 정부의 몫은 이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필요한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뿐이다.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불법파업을 방지하는 관행과 제도는 인천에 건설하려는 경제자유구역보다 몇 배나 중요한 사회 인프라이다. 정부가 이 중요한 사회 인프라 건설에 최우선 순위들 두고 총력을 기울여 주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송 의 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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