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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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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좋은 하루 되세요"

입력
2003.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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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인지 "좋은 하루 되세요" "고맙습니다"란 인사를 자주 듣게 된다. 젊은이들이 "좋은 아침!" 이란 인사를 주고받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모두 영어를 우리말로 옮긴 것 인데, 적절한 인사가 부족하던 터라 꽤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우리 말에 인사말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할 때 항상 예로 드는 것이 "진지 잡수셨습니까"란 인사다. 지금 들으면 우습지만, 농경사회에서는 따뜻한 배려가 담긴 인사였다. 그러나 그 인사는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속에 우스꽝스런 골동품 취급을 받고 있다.

우리가 풍부한 인사말을 갖지 못한 것은 깍듯한 인사보다 은근히 마음을 전하는 것을 점잖게 여기는 국민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적절한 인사말이 발달하지 못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공동체 의식이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질만능 풍조, 무한경쟁, 너 죽고 나 죽자는 막가파식 대결이 만연하면서 인사는커녕 적대감으로 서로를 대하는 병든 사회가 됐다. 한 아파트 주민끼리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웃으며 인사하는 대신 아래 위를 쓱 훑어보는 민망한 사회가 됐다.

나는 택시를 타면 불친절이 겁나서 운전기사의 기분을 살피는 버릇이 있다. 택시에서 내릴 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도 오랜 습관이다. 기사가 불친절했더라도 열악한 근무환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고맙다는 인사가 그의 강퍅함을 누그러트려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십중팔구 인사를 잘라먹고 휙 떠나버렸다. 신경질 나게 무슨 인사냐는 듯이.

그런데 최근에 (대개 1년 전쯤부터) 인사에 대한 응답이 돌아왔다. 내가 인사하기 전에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먼저 인사하는 기사들이 더 많다. 월드컵 등의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기사들에게 '친절교육'을 시행한 결과인가 생각해 본다. 아니면 이제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되어 서로 인사를 주고받을 여유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인사를 주고 받는 순간 택시기사와 나는 '우리'가 된다. 신경질을 내며 휙 떠나버리던 택시기사에 대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콩가루로 흩어졌던 구성원들을 한마디 인사가 공동체로 맺어준다. "좋은 하루 되세요"란 인사는 함께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약속이 아닐까.

지난 주엔 매우 기분 좋은 인사를 받았다. 그날 나는 우울한 기분을 털어버리려고 빨간 재킷을 입었는데, 택시기사는 나를 목적지에 내려주며 "멋쟁이 아줌마.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말했다. 세상에! 가끔 '할머니'로 불리는 나이에 '아줌마'로 불러준 것도 기분 좋은데 '멋쟁이 아줌마'라니! 나는 계속 그 얘기를 자랑하고 다녔다.

식당에서도 백화점에서도 "좋은 하루 되세요"란 인사를 자주 받는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에 대한 '친절교육'의 성과임이 분명하지만 고객과 주인, 고객과 점원사이에 서로 인사를 주고 받을 만큼 친밀감이 생겼음을 느낀다. 세상이 날로 험악해 지고 있다고 한탄만 할 게 아니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분노하는 공동체 의식을 토대로 공감대가 형성돼 가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사람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개 의견이 일치한다. 지역감정이나 특정인에 대한 지지를 넘어서 상식으로 시비를 가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양극단으로 분열되고 있다고 걱정들 하지만 상식이 회복되고 있다는 좋은 징조도 보인다.

그런데 결코 인사하고 싶지 않고, 인사를 통해 '우리'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물먹는 하마처럼 끝없이 돈을 먹고, 거짓말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독선과 부패와 무능을 겸한 정치인들이 그들이다. 모두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우리'가 되어가는데, 정치인들은 예외다.

거리에서 만나는 정치인들에게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인사하고 싶은 사람 있나요? 자기 혼자 깨끗한 척 준엄하게 남을 꾸짖더니 누구보다 심한 부패의 악취가 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미소 짓고 싶나요?… 인사가 되살아 나는 나라에서 정치인들은 왕따 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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