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개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고 있네….' 이런 노래가 있을 정도로 과거 우리는 허리가 거의 70도로 꺾인 꼬부랑 할머니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꼬부랑 할아버지도 드물게 있기는 하다. 하지만 척추를 다루는 정형외과 의사들은 등굽음증이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 30배는 많은 것 같다고 보고한다. 과거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요즘도 60∼70대 여성 중에는 허리가 굽은 경우가 여전히 많다. 왜 여성에게는 등 굽은 증상이 많은가.
뼈의 형성부터 다른 남자와 여자 1980년 미국 아리조나대 방사선과 제럴드 폰 교수는 여성이 태어날 때부터 남성보다 약간 더 등 굽음증이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등이 굽은 각도를 측정한 결과 0∼9세에서 남아는 20.88도, 여아는 23.87도, 10∼19세에서는 남자는 25.11도 여자는 26도로 아직 뼈나 인대 근육이 노화하지 않은 연령에서도 여성의 등이 남성보다 많이 굽어있었다. 성인이 되면 약 40도 전후가 정상인데 이보다 등이 더 많이 굽게 되면 척추후만증이라 한다.
여성호르몬이 주범 허리굽음증이 자연적으로 누구에게나 오는 노화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여성호르몬 부족으로 인한 골다공증이 꼬부랑 할머니를 만든다고 단언한다. 경희대의대 정형외과 김기택 교수는 "골다공증은 여성에게서 남성보다 2배 이상 많이 발생한다. 영양상태나 환경적인 요소등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골다공증은 폐경으로 인해 에스트로겐 호르몬 분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뼈의 밀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성의 경우 20∼30대에 최고 골량을 보이다 그 이후부터는 10년에 약 5%씩 꾸준히 감소하나, 여성의 경우에는 20대 초반 최고치를 보이고 45세 이전까지는 10년에 4%씩 감소하나, 45세 이후 즉 폐경이 되면서 10년에 약 13%의 급격한 감소를 보인다는 것. 여성은 나이가 들면서 38%의 뼈가 손실되는 반면 남성들은 23%의 뼈만 손실된다는 통계도 있다.
대한정형외과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폐경기 여성의 40%에서 골다공증이 발견되며 70세 이상에서는 50%이상이 골다공증으로 인한 골절을 나타낸다는 것. 또 골다공증으로 동반되는 척추압박골절 역시 많이 발생, 60세 이상 여성 가운데 4분의 1이 척추압박골절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교수는 "척추 뼈 앞쪽이 눌려 찌부러지는 골다공증성 압박골절은 사각형 모양의 척추체(脊椎體)를 삼각형 모양으로 바꾸게 해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줄어드는 척추의 상하 높이 역시 허리가 굽어지게 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말했다.
수명이 길다 남성보다 평균 몇 살이나 수명이 길므로, 자연 골다공증에 걸리는 절대 환자 수도 남성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임신으로 늘어나는 복부 근육 '내가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던 것은 아이를 갖고 나서부터였다.' 많은 여성들은 임신 중 허리 통증을 호소한다. 우리나라 여성의 반이 임신 중 요통을 호소한다는 보고도 있다. 임신 중에는 배가 부풀어 오르면서, 허리를 바로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복부근육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는 임신 중 프로게스테론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면서 복부근육을 단단히 잡고 있던 결합조직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세란병원 신경외과 오명수 부장은 "임신 중 복근을 잘 조절해야 한다. 복근 조절을 못하면 요통이 생기며, 임신 후 허리도 굵어지고 배도 늘어지면 아기를 낳은 후에도 요통으로 고생한다"고 말했다. 허리뼈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출산 후는 물론 임신 중에도 복부근육 강화 운동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복근운동의 강도는 임신 중에는 약하게, 출산 후에는 강하게 하는 것이 좋다. 또 하이힐을 신으면 허리의 만곡(전만증)이 증가하므로 갓 출산 후 높은 구두를 신는 것은 좋지 않다.
허리를 펴지 못하는 꼬부랑 할머니 외국 여성들은 등은 굽어도 허리는 잘 굽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성들은 허리부분에서 굽어 완전히 기역(꼟)자로 굽는 경우가 많다. 이의 원인에 대해 김기택 교수는 "온돌방 생활이라는 독특한 문화적 습관 외에도 쭈그리고 앉아 일하는 우리나라만의 생활 습관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청소나 빨래를 할 때 우리나라 여성들은 주로 엉거주춤하게 앉아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자세가 등 근육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수십년간 농사일을 많이 한 여성중에 꼬부랑 할머니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김교수는 이를 '구획증후군'이라 부른다면서 "허리를 쭈그리고 일하는 동작이 반복되면 등 근육이 위축되면서 뼈 속내 혈액 흐름도 나빠지게 되고, 점점 근육은 경직된다"고 말했다. 허리 굽음증을 예방하려면 가능하면 서구식 침대생활이 좋다. 방을 닦을 때는 가능하면 밀대 걸레를 이용하고 다림질도, 앉아서 하기보다는 서서 하는 것이 허리에 좋다.
꼿꼿한 허리를 갖고 싶다면 골다공증 예방은 젊어서부터, 폐경 전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운동. 허리 근육강화를 위해 의사들은 속보를 권한다. 등 근육을 꼿꼿이 세운 채로 빠르게 걸을 경우 골격 구조에도 좋을 뿐 아니라 골량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는 것. 이외에도 산보 조깅 자전거타기 등산 등도 여성들에게 뼈를 강화시킬 수 있는 운동이다. 이러한 운동은 뼈에만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심장이나 폐도 함께 튼튼히 한다.
칼슘이 풍부한 식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폐경 전 여성이라면 1일 1,000㎎, 폐경 후 여성이라면 1,500㎎ 정도가 권장량이다. 우유 치즈 요구르트 두부 생선 시금치등에 칼슘이 많이 들어있다. 술 담배 카페인은 삼가는 것이 좋다. 담배는 난소에 해로우며 호르몬 수치를 감소시킨다. 카페인이 많이 들어있는 커피는 뼈의 주요 성분인 칼슘을 체내에서 소변으로 방출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칼슘 섭취는 부족한데, 커피가 계속 마실 경우 뼈의 심각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비만도 좋지 않다. 배가 나오면 척추근육을 늘어나게 할 뿐이다.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60∼70대 할머니에게 허리교정수술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김교수는 "환자들의 70∼80%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허리 근육의 기능이 살아있는 여부가 수술 조건이 될 수 있다. 입원기간은 2주 정도 소요된다.
yjsong@hk.co.kr
■수술받은 65세 할머니 허리 펴고 얼굴도 활짝
등이 굽은 환자만 보면 얼마 전 수술했던 65세 할머니가 떠오른다. 3년여를 골다공증성 척추 골절로 약물 치료를 받았던 할머니는 등이 심하게 굽어 보조기도 착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라 권했으나 "창피하다"며 할머니는 약처방을 받으러 올때마다 "수술은 안돼?"라고 묻곤 했다. 수술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연세가 많고 골다공증도 심해 나는 "할머니 큰 수술이라 위험해요. 먼저 골다공증 약을 드시고 다시 이야기해요"라고 받아넘기곤 했다.
어느날 할머니는 "수술이 잘못되면 앉은뱅이 되고, 똥오줌까지 받아내야 하나?"라고 물었다. "그런 상황보다는 수술이 커서 돌아가실 수 있다" 라고 했더니 얼굴이 환해지며 "죽는 거는 무섭지 않아. 이런 모습으로 사는 건 죽는 것보다 못하다"며 수술을 원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할머니는 퇴원하며 왜 진작 이런 좋은 수술을 해주지 않았냐며 "수술 후 잘못되었을 경우 난처해질까 염려하기보다는 환자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 의사가 되어달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과거 노인에게 수술하자고 하면 이 나이에 무슨 허리 수술을 하며 오히려 의사를 핀잔 주던 환자가 많았는데…. 이제까지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발상으로 환자를 치료해 왔는지 뉘우치게 됐다. 더욱 더 좋은 수술 개발에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김 기 택 경희대 정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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